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지난 1월 9일 일본으로 돌아갔던 나가미네 야쓰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지난 4일 오후 귀임(歸任)했다. 85일 만에 돌아온 그는 “일본 총리와 외무대사에게 지시를 받았다”며 “신속하게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일간 합의를 강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부산과 서울의 일본 공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들이 철거되도록 현 정부와 차기 정부에 강하게 주문하겠다는 이야기다.
일의 전후를 따져보자면 참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요, 수치스럽고 분노스러운 일이다. ‘용서와 화해’라는 두 가지 항으로 나눠볼 때 그렇다. 외교 관례상 매우 높은 경고 수준에 해당하는 대사와 영사의 본국 소환카드를 빼들었던 아베 총리는 소녀상 설치를 두고 “소녀상은 위안부 합의를 역행하는 것으로, 국가 신용의 문제이니 한국도 성의를 보여라”고 다그쳤다. 그러더니 ‘특별한 모멘텀’없이 슬그머니 대사와 공사를 귀임시키며 다시 한 번 가라앉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가라고 한 적도 없고, 또 오라고 한 적도 없다. 외교적 결례까지 저지르며 오간 것은 일본이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일본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행태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어느 세상의 상식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해달라고 위협할 수 있는가. 더구나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일제 식민강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일본 외무상을 내세워 “존엄성의 상처에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며 사죄와 반성을 한다”는 표명만 했을 뿐이다. 그는 공개적인 직접 사죄를 거부했다. 더구나 합의 직후에도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위안부는 전쟁범죄가 아니고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억지 주장을 내놓았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철저하게 잊고 싶은 일이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죽어도 잊을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한이요, 상처인 것이다.
일본이 이처럼 막무가내식으로 소녀상 철거를 강요하는 데에는 우리 정부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국민적 여론도 수렴하지 않은 채 2015년 박근혜 전 정부가 10억엔을 받으며 일본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해준 것이 그것이다. 그것들이 빌미가 돼 일본의 뻔뻔한 요구들을 쓰라린 마음으로 우리는 듣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국민적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잘못된 합의는 무효로 돌려야 한다. 그것은 국가간 신용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해야 할 ‘인간 존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가미네 일본대사가 귀임한 4일, 위안부 피해자인 이순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다시는 내가 일제에 끌려가 당했던 고통을 누군가 다시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 등록 피해자 239명 가운데 이젠 38명만 남았다. 정부가 그분들의 한을 보듬고 풀어주기는 커녕 치유될 수 없는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는 이제 절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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