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더라도 연기하다 죽을 것”… 마지막까지 투혼

김영애(사진)는 평소 “죽더라도 연기를 하다 죽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연기 투혼을 불태우다 결국 9일 오전 눈을 감았다.

연기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투병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연기가 더 절박해졌다.

2012년 ‘해를 품은 달’에서 대왕대비를 연기하던 중 난데없이 췌장암 판정을 받고 심각한 상황에까지 직면했지만, 그는 이를 주변에 알리지 않고 병원을 몰래 오가며 독하게 드라마를 마무리했다.

훗날 “고통을 참으려 허리에 끈까지 조여매고 연기했다”고 고백한 그는 당시 해외 유학 중이던 외동아들에게조차 몸 상태를 알리지 않고 만약을 대비해 안사돈에게만 몰래 알렸다.

고인은 ‘해를 품은 달’이 끝난 후에야 9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몸무게가 40㎏까지 줄어들었고, 암의 고통은 시시때때로 밀려왔지만 병에 무릎 꿇지 않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치료에만 전념할 시간에 그는 “연기를 안 하면 오히려 더 아프다”며 드라마와 영화를 부지런히 넘나들었다.

주인공의 엄마, 할머니 역으로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그는 매 작품 배우 김영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줬고, 그로 인해 그가 투병 중임에도 작품 러브콜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연기를 해야만 버틸 수 있다”고 말한 그는 극심한 고통에도 작품 활동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했다.

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 ‘메디컬 탑팀’ ‘미녀의 탄생’ ‘킬미 힐미’ ‘마녀 보검’ ‘닥터스’와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변호인’ ‘우리는 형제입니다’ ‘현기증’ ‘카트’ ‘허삼관’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인천상륙작전’가 그가 투병 중 출연한 작품이다.

지난해 8월 시작한 KBS 2TV 주말극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제작진 역시 김영애만이 양복점의 안주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그를 캐스팅했다.

하지만 갈수록 쇠약해지는 몸과 바닥을 치는 체력에 그는 결국 드라마 시작 두 달 뒤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이후 매주 목요일마다 외출증을 끊어가며 서울 여의도 KBS 녹화장을 찾아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냈다.

의료진은 더 이상 촬영을 하는 게 무리라며,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만 고인은 작품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며 6개월간 약속한 50부 출연을 이를 악물고 해냈다.

평소 진통제로 버텼지만, 녹화날에는 진통제를 맞지 않았다. 명료한 상태에서 연기를 해야하는데 진통제가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통증은 자연히 배가됐다.

그는 그렇게 연기를 하면서도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삶에 대한 의지를 놓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굴의 의지로 50부를 무사히 마친 그는 그러나 드라마가 인기에 힘입어 연장한 마지막 4회 출연은 고사했다. 더는 버티지 못할 상황임을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신변 정리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스스로 영정사진과 수의로 입을 고운 한복을 골랐고 장례절차 등도 모두 정해놓았다.

이승과 작별하기에 앞서 배우 인생을 돌아보는 마지막 인터뷰도 진행해 놓았다.

“내가 직접 다 정리하고 가야 마음이 편하다”던 그는 지난 2월초 “이제 다 정리를 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제작진은 마지막회에 김영애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자막을 내보낼 계획을 세웠다. 투병 중에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한 것을 기리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김영애는 연기자로서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제작진의 제안을 고사했다.

배우 김영애는 그렇게 불꽃처럼 살다 조용히 떠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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