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식 <청주흥덕신협 이사장>

지난 3월 7일 인천공항을 떠난 나는 16시간의 비행을 거쳐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은 아직 꽃샘추위가 겨울옷을 벗지 못하게 하는 날씨였는데 아디스아바바는 마치 초가을 날씨처럼 선들거렸고 햇볕은 따가웠다.

우리 에티오피아충북방문단 11명을 인솔하는 조철호 단장(동양일보 회장)은 21년간 매년 이 나라에 온 터라 첫 방문자들인 우리들에게 자상한 설명을 잊지 않았다. 아디스아바바는 2400m 고지에 만들어진 도시여서 기온이 사철 비슷하고, 강수량이 적어 먼지가 많은데다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여서 모든 차량들의 배기가스가 완전 연소가 되지 못해 매연이 많아 도시가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리다는 등의 설명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짐을 챙겨 15분 거리에 있는 시내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시내에 들어오면서 우리들 눈길을 사로잡는 건 아프리카에서도 특별하다는 에티오피아인들의 갈색 피부와 선량하게만 느껴지는 눈망울, 이 나라사람들의 남루한 옷차림과 가난에 찌든 표정들이였다.

여기 저기 올라가는 고층건물을 짓는데 쓰이는 ‘아시바’(비계·飛階)가 어디서나 삐뚤삐뚤한 나무막대를 이어 쓰고 있는 것이나, 달리는 중고차들이 매연을 뿜고 다니는 도로 어디에도 신호등이 없고 아무 곳에서나 유턴을 하는 등의 낯선 풍경들이 방문자들을 놀라게 했다.

여행의 피로도 가시지 않았는데 이튿날부터 우리는 꽉 찬 스케줄에 따라 바쁘게 다녀야했다.

우선 김문환 에티오피아 대사의 점심초대가 한국식당에서 있었다. 충북도민들이 20년이 넘게 에티오피아를 돕고 있는 것부터가 이곳을 돕는 많은 NGO(민간기구)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며 한국인들이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자세에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우리 방문단은 이날 오후 물라투 테쇼메 에티오피아 대통령을 방문해 20여 분간 환담을 나눴다. 테쇼메 대통령은 해외 대사를 역임하고 한국도 방문했던 인물인데, 충북도민들과 에티오피아간 깊은 우정에 대해 “한국인들은 이제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에티오피아에 많은 관광객이 오도록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고 말했다. 테쇼메 대통령의 이같은 부탁은 근래 들어 에티오피아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하고 커피의 원산지임을 관광자원화 하려는 정책과 무관치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이어서 드디어 보고 싶은 이들-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있는 참전용사회관을 방문했다.

회장단과 3~40명의 노병들이 우리를 반겼다. 대한민국 충청북도방문단은 이들에게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미 20여년 간을 매년 찾아와 ‘사랑의 점심나누기’를 통해 마련한 선물을 전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등 도타운 우정을 쌓아온 처지였음을 증명이나 하듯 친숙한 표정들이었다. 몇 명은 군복에 녹슨 훈장과 기장을 달고, 몇 명은 낡은 양복에 훈장과 기장을 달고, 몇 명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회관 옆 참전 기념탑에 헌화를 하고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80대 중,후반이거나 몇은 90이 넘었단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꼿꼿한 자세와 절도 있는 태도로 일관하여 팔순 노인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들이 66년 전, 20대 꽃다운 청년들로 배를 타고 파도를 넘어 2개월을 달려 한국전선에 투입된 에티오피아 육사 1기와 2기의 근위대 장교거나 그들을 중심으로 한 6000명의 전투병들이였음을 상기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굵고 깊은 주름으로 덮인 얼굴인데도 이들 노병들은 우리를 향해 시종 웃고 있었다. 가까운 친척이거나 친구사이만 같은 편안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잊지 않고 매년 찾아주는 충북도민의 깊은 사랑을 고마워했다. 한때는 한국전선에서 용감무쌍했던 그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어 춥고 배고팠던 한국전선의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자신들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혈맹국의 우정을 환한 미소로 답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에 머문 며칠간 많은 것을 보고 왔지만,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는 참전 노병들의 그 꾸밈없는 미소였다.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은 그 노병들의 건강장수를 기원하며….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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