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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창 주간, 카이스트 제정 2회 미래세대상 수상
김태창 주간, 카이스트 제정 2회 미래세대상 수상
  • 조아라 기자
  • 승인 2017.04.09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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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강연 소감문 및 일문일답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최근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과 미래학회가 주관하는 제정한 2회 미래세대상을 수상했다. 김 주간은 지난 3월 9일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 후 특별강연을 하고 참석자들과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과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이 이날 행사에 대한 소감문을 보내왔다. 이들의 소감문과 김 주간과 참석자들과의 일문일답 내용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특별강연 내용은 추후 게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장래세대와 공공하는 한국사회를 꿈꾸며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난 3월 9일 오후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있었던 ‘2회 미래세대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수상자는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미래세대상은 2015년 12월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원장 이광형)’의 주관으로 시작돼 올해로 2회째를 맞는다. 미래세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제고함과 동시에 미래세대의 행복증진을 위한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상으로, 미래세대의 권익과 행복을 위해 노력한 단체나 개인에게 수여한다고 한다. 1회 미래세대상 시상식에서는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아동 인재양성과 복지사업을 펼쳐온 ‘초록우산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과 미디어를 통해 청소년들의 다양한 소리와 문화를 담아낸 ‘다음세대재단(대표 방대욱)’이 공동 수상했다.

2회 시상식은 문술미래전략대학원과 미래학회(회장 이광형)의 공동 주최로 마련됐다.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은 2013년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으로 출발해 지난 3년 동안 미래전략 학술대회와 심포지엄 등을 개최해 왔다. 한편 미래학회는 2016년에 발족해 학술지 ‘미래연구’ 발행과 함께 월례 세미나를 진행해 왔다.

수상자인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지난 30년 가깝게 일본을 거점으로 장래세대종합연구소가 일본 국내외에서 개최한 국제장래세대철학포럼과 공공철학공동연구소가 일본 국내외에서 개최한 공공철학교토포럼을 통해서 지역 간, 세대 간 상생과 공공의 철학대화 운동을 주관해 온 한국인 철학자이다.

영어로는 ‘Co-Creating a Public Philosophy for Future Generations(Prager Pub, 1999)’와 ‘Self and Future Generation(The White Horse Press, 1999)’, ‘Why Future Generations Now?(Kyoto institute for the integrated study of future Generations 1994)’를 통해서 그리고 일본어로는 ‘世代間?係から考える公共性(東京大學出版會, 2006)’ 등 다수의 출판물을 통해서 미개척분야였던 미래학, 그 중에서도 장래세대학 연구의 철학적, 실천적 토대구축에 진력한 공로가 인정돼 두 번째 미래세대상에 선정됐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었다.

첫 번째 시상식에서는 미래세대 복지활동에 힘쓴 단체에게 상이 주어졌다면 두 번째 시상식에서는 미래세대 철학정립에 선구적인 업적을 쌓아온 사상가 개인에게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상식이 갖는 특별한 의의에 대해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오늘의 이 상은 비록 미미한 시작에 불과하지만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작은 부싯돌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겠다.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미래세대가 학계와 사회의 이슈가 되었는데, 우리는 이제서야 미래세대에 눈을 떴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많이 뒤져있다는 증거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에서의 장래세대 논의의 중심에 김태창이라는 한국인 학자가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김태창 주간은 “생각지도 못했던 상을 받게 되어 기쁘다”고 말문을 열면서 “내가 일본에서 전개해 온 세대 간 상생의 장래세대학과 지역 간 상생의 공공철학은 누가 혼자 하는 철학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으키고 키워가는 자타 상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상을 받는다고 하면 지난 25년 동안 교토포럼에 참여해 준 2000여명의 참가자와 함께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일본 국내외의 몇 군데서 상을 주겠다는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사양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국인 한국에 돌아와서 일본에서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공식적인 직책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자유로운 입장에서 주시는 상을 받을 수 있었고 감사하다”는 수상소감을 피력했다.

이번 시상식은 특별히 미래학회의 월례발표회를 겸하는 자리에서 수상자인 김태창 주간의 특별강연과 청중과의 대화도 진행되었다. 김 주간은 강연에서 껌팔이 고아소년에서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가 된 최성봉씨의 감동적인 데뷔 영상을 소개하면서, 어떤 역경과 절망적인 상태에 처하더라도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있으면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다는 체험적 스토리텔링을 펴 나갔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단테 ‘신곡’의 ‘지옥편’ 첫 머리에 나오는 “여기에 들어가는 자는 희망을 버려라”는 말을 인용하고 “지옥이란 바로 희망이 없는 곳”이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보았다. 또한 ‘미래’는 “오지 않는 것(not yet come)”이라는 소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제 막 도래하는 것(ready to come)”이라는 적극적인 뜻이 담긴 ‘장래’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장래세대’라는 말을 만들게 된 경위와, 미래는 혼자 만드는 독창(獨創)이 아니라 함께 일으켜가는 공창(共創)이라는 의미에서 ‘미래공창’ 개념을 생각하게 된 배경을 소개하면서, 한·중·일이 함께 더불어, 서로서로 동아시아의 미래를 열어갈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현재세대가 장래세대의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장래세대를 위한 행복의 씨앗을 모두 함께 더불어, 성심껏 뿌리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장-프랑수아 밀레의 작품 ‘씨 뿌리는 사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음악과 미술과 철학과 스토리텔링이 어우러진 새로운 인문학의 현장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청중과의 대화가 이어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에 이어지는 일문일답에 소개되어 있다.

원고 하나 없이 2시간 넘게 지속된 철학대화가 모두 끝나자, 김경동 명예교수는 “내용이 너무 좋아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감동적인 담화였다”는 소감을 표했고, 이광형 미래학회 회장은 “감동적인 강연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선생님을 도와드릴 방법이 뭔지를 고민해보겠다”는 감상을 피력했다.

내가 ‘장래세대’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 전에 참여한 교토포럼에서였다. “과거세대-현재세대-미래세대를 맺고 잇고 살리는 삼세대 상생과 연대의 철학”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

왜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국 사회는 기성세대의 세대이기주의가 젊은이들의 희망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세종실록에서 우연히 ‘시후지도(示後之道)’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시후지도’란 ‘후대에게 보여주는 도’라는 뜻으로, 세종이 어떤 마음으로 정치에 임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어쩌면 장래세대라는 개념도 세종의 ‘시후지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미래세대론과 공공철학 강의를 듣고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부연구위원

 

한국사회가 미래학(futures studies)을 받아들였던 1960년대는 막 근대화 프로젝트가 실행됐던 시기였다.

전후 황폐해진 한국사회를 어떻게 재건하느냐, 또 세계적 흐름이었던 산업사회에 얼마나 빠르게 진입하느냐에 온통 정신이 쏠렸을 때였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당시 세계미래학계(예컨대 세계미래학연맹)의 중심 주제였던 근대에 대한 반성,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빚어내는 환경오염과 자연파괴 이슈들, 맹목적인 과학중심주의에 대한 성찰과 대안 등에 한국의 미래학계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우리도 60년대 세계미래학계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탈식민주의, 자원고갈, 환경보호, 미래세대의 행복까지 고려하는 세대간 정의(intergeneratonal justice)에 대해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90년대까지도 소수의 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주제였다. 우리는 여전히 경제적 성장에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였다. 위에게 제기된 문제들은 당장의 중요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요 담론에서 밀려났다.

필자는 미국의 하와이대학에서 미래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에서 어떻게 미래학을 받아들이고 변용시켰는지 추적하면서 김태창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김태창은 90년대 이후 미래학계 논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미래학 스승이었던 짐 데이터(Jim Dator) 교수의 공동저작에도 그의 이름이 있었다. 호기심에 김태창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지 살펴보니 키워드 두 개가 나타났다. 하나는 미래세대론(future generations studies)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공공철학(public philosophy)이었다.

좀 더 연구의 범위를 넓혀 미래학계 문헌뿐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에도 그의 이름을 찾아보니 일본에서 발행된 문헌들, 영국에서 발행된 문헌들이 눈에 띄었다. 그와 데이터가 공동 편집한 책이 1994년과 1999년에 각각 Creating a New History for Future Generations과 Co-Creating a Public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간행됐다. 당시 김태창은 매우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었다.

1994년에는 또 다른 책을 간행했는데, Why Future Generations Now?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책이었고, 그는 아시아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으며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이런 변화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에는 Self and Future Generations: An Intercultural Conversation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잠시 그의 미래세대론이 미래학계에서는 뜸하더니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 학계에서 그의 이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번엔 공공철학이라는 분야였다.

2007년 김태창은 철학과 현실이라는 저널에 ‘공공철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글을 게재했고, 그해 충북대 김용환이 ‘과정과 한의 공공철학의 만남’이라는 논문을 펴냈다. 김봉진은 ‘공공철학의 지평’이라는 논문을, 야규 마코토라는 일본 학자는 ‘공공철학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시론’이라는 글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철학과 이명한은 2011년 ‘공공철학과 공공철학 보급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공공철학에 대한 막연한 이해에 멈춰져 있던 필자는 이번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의 초청으로 열린 김태창의 강의를 듣고 좀 더 구체적으로 공공철학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의 말은 ‘공공철학하다’였다. co-creating public philosophy를 그는 매우 간명하면서 그 가치를 담은 번역, 공공하는 철학으로 설명했다.

나는 ‘공공하는’ 이라는 단어가 현재 우리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이자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번역은 하와이대학 철학과의 로저 에임스가 도(道)를 the way making으로 번역한 것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형성되는 것이듯, 공공이라는 말도 사회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그래서 진화를 거듭하는 개념임을 김태창은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미래를 이미 결정된 시간이나 공간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는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과도 맞닿는다.

김태창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분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시간을 마치 거미줄(web of time)처럼 얽혀있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세대가 해야 할 일은 조상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왜, 과거, 현재, 미래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있는 대로 인정하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구성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적 시각으로 미래학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태도와 철학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아시아의 시각에서 세계 미래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김태창의 노력과 시도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미래세대상 수상 특별강연 후의 일문일답

질문: 하와이대학에서 짐 데이터(세계미래연구협의회 회장)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미래학을 공부하는 가운데 김태창 선생님의 미래학에 관한 연구업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김 선생님께서 쓰신 ‘Co-creating a Public Philosophy for Future Generations’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강연이 특히 더 감명 깊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오랫동안 일본 도쿄와 교토, 오사카에서 공공철학 대화활동을 주관하시다가 최근에 한국 충북 청주에 돌아오셔서 동양포럼을 일으키시고 거기서 새롭게 ‘지방간 상보상생과 세대 간 계승상생의 인문학’운동을 전개하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도 지방과 장래세대에 더 밝은 미래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방은 늘 재정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장래세대에 대한 배려와 책임이 소홀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방과 장래세대를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희망차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제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한국은 서울공화국과 그 주변의 영토로 비칩니다. 모든 지적생산은 서울의 현재 세대 중심으로 그들에 의해서 그들을 위해서 산출되고 지방과 장래세대는 그것을 소비만 하는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나라는 오히려 지방에 특수한 문화가 있고 철학이 있고 사상이 있어서, 이것들이 서로 경쟁도 하고 융합도 시도하는 가운데서 나라 전체의 사상적·철학적·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사고와 판단과 실천과 책임이 장래세대가 보다 나은 미래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데 중심축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함께 열고 일으키는 지방 간, 세대 간 생상과 미래공창의 인문학적 상상력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생활의 현장에서 체험-경험-중험-효험의 과정을 통해서 단련된 체험지, 생활지, 민생지의 공동함양이어야 합니다. 국가 기관이나 그것에 종속된 곳에서 관 주도로 형성 보급 시행되는 제도지, 관지, 전문지의 성격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제도지, 전문지의 한계는 우리나라의 세월호 참사와 일본의 3.11 참변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서 증명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지하게 생각해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지방 간, 세대 간 상생과 미래공창의 인문학적 상상력은 한편에서 바람직한 미래는 누가 혼자서 열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따라만 가는데서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깨달음을 공유할 필요가 있고 또 한편에서는 누군가의 자의적인 의지나 욕심으로 만들어낼 수 없고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서 조건과 환경과 활력을 일으켜야 된다는 것을 서로가 다짐하고 일상적으로 실천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독창적 상상력이 아닌 미래공창적 상상력입니다. 그것은 자기생명중심적 상상력이 아닌 자타상생적 상상력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지향하는 공통가치가 지방간, 세대 간 활명연대의 형성에 초점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국 내에 국한되지 않고 적어도 동아시아의 공통가치로 광역화되고 고도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저 자신이 충북 청주에서 국내적으로는 경북 안동과 전북 익산을 연계해서 지방 간, 세대 간 인문학 대화를 통해서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적인 외침에 대해서 ‘이게 나라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인문학적 공동탐구를 시작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제가 사는 오사카에서 동북 일본의 센다이와 일본 문화의 근거지인 교토를 연계하는 지방 간, 세대 간 인문학 대화를 전개해온 바 있는데 우선 한일 두 나라에서의 대화 활동을 상관연동시키는 쪽에도 주력하고 중국에서 전개해 온 것과도 연관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질문: 저는 교육학이 전공인데, 그 중에서도 상담이나 치유와 관련된 쪽입니다. 저희 분야는 정신분석학이 중심이어서 치유를 할 때 과거가 대단히 중요한데, 과거에 대한 통찰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과거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미래나 희망도 매우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2000년도에 비행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을 때도 꿈과 희망을 키워드로 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본격적으로 저희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선생님께 조언을 청하고 싶습니다.

답변: 적실성이 높은 질문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에 오기 전에, 2011년 3월 11일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난 일본의 센다이에 있는 토호꾸대학(東北大學)에서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정신병리학을 전공하는 한 한국인 유학생이 자기의 지도교수와 함께 그동안의 지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전개했던 치료활동의 결과에 대해 발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의 이야기에 의하면, 프로이드나 융의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환자가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고 어떤 부정적인 경험이 있어서, 현재의 의식과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병적인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치료를 해 보았는데, 치료행위의 결과가 바라는대로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경우에는 치료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센다이의 지진 피해의 경우처럼 자기 가족이나 친척을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경우에는, 서양적인 의미에서의 정신치료법을 시행해보아도 큰 효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인 환자와 일본인 환자는 역시 다르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카네비시 키요시라는 젊은 사회학자가 미국에서 공부했던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일단 청산하고 지진 때 상처를 입은 환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일일이 만나서 그들과의 면담경과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의 근원에 대한 공감적 대화치유의 방법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영혼의 공진·공명·공감이 갖는 커다란 치유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참마음으로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을 함께 할 때 그것이 자타간·상호간에 영성의 울림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영혼의 치유력이 상상이상의 치유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대단한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병적증상의 근본원인은 과거에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은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미래를 함께 더불어 서로 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공유를 통해서 솟아나고 자라고 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신화에서 이 세상의 온갖 재난과 불행을 가져온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희망이었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에서야말로 그 깊은 뜻이 체감되는 것 같습니다.

질문: 저는 기술이나 경영이 전공이라서 동양학이나 철학에 대해서는 공부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언젠가 한국사상의 원형이 뭘까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천부경’을 접하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깊이 있게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문헌 자체가 워낙 돌출적으로 나온 것이어서, 이것이 과연 한국사상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이 과연 우린 한국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답변: 저도 같은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할 때 보다 외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우리 것을 알고 그것을 자신 있게 제시하고 설명할 필요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철학적 빈곤에서 오는 좌절감과 패배의식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의 일화를 소개해 드리면,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초대교수였던 박종홍씨가 세계적인 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초청을 받고 자택을 방문하게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이데거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서 초청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게다가 하이데거가 집에 직접 초대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하이데거가 하는 말이, “일본학자들과 대화를 해서 일본철학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철학자들과의 얘기를 통해서 중국인의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를 받았다. 그런데 한국인의 독자적인 철학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인의 철학이야말로 근원 철학(radical philosophy)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문헌이 ‘천부경’이라는 말을 들었다”라면서, 직접 ‘천부경’을 보여주더니 “이것을 좀 해석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종홍씨가 그때까지는 서양철학만 하고 한국철학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천부경’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하이데거에게 한국인의 철학을 알게 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말을 어떤 신부님의 회고담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천부경’은 하이데거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천부경’ 해설서들은 너무 아전인수 적이고 견강부회적인 것이 대부분이어서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이해와 납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의 개인적인 해석과 저 나름의 이해를 정리해둔 바가 있습니다만은 오늘은 한 사상의 핵심을 파악하고 설명하는데 좋은 문헌적 자료의 하나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말씀만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위서논란이 끊이지 않고 학술적 신빙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이 팽배하는 현상입니다만 저 자신은 다른 문헌들과 함께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참전계경’은 방법과 관점을 제대로 세우고 접근한다면 한(인·민) 철학의 새로운 공동구축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자료로써의 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선생님 말씀 중에 “일본의 유명한 작가가 일본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지만 희망이 없다고 말을 해서 선생님께서 한국은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희망만은 있다”는 말씀으로 대비를 분명히 하셨다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젊은이들이 한국을 희망이 있는 나라로 보게 하려면 어떤 생각을 가져야 될까요? 그리고 청년들이 기성세대에게 어떤 시각으로 다가가야 기성세대와 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

답변: 저 자신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았던 시절에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하나라도 있게 되면 감사했습니다. 지금 학생들은 부모님의 노력과 사회발전의 덕택으로 저희들 세대보다는 훨씬 있는 것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삶을 살아본 경험이 없이 태어날 때부터 거의 모든 것이 대충 갖추어져 있는 가운데서 살고 있어서 하나만 없어도 바로 좌절하고 희망을 접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대 간 의식격차가 큰 것 같은데 그것을 메우려면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제도와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츠쿠바대학 교수가 교토포럼에 와서 크게 반성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강의를 하면서 너무 비판적이고 비관론적인 얘기만 해온 것 같아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건설적이고 낙관적인 얘기를 해야 학생들이 희망을 갖지 않을까, 기성세대로서 교육을 잘못했다는 자기반성이었습니다. 그런 반성이 축적되는 가운데서 마침내 일본에서는 희망학선언(2005년 7월 15일의 희망학 심포지엄)이 나오게 되고 현대사회의 특징을 ‘희망격차사회’로 규정하고 여러 학문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협력해서 종합적인 희망상실사회에 대한 대책마련에 주력하게 되고 그 이후 나름대로의 성과를 산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감각이나 저보다 조금 위와 조금 아래의 연령층을 합쳐 30년쯤을 한 세대로 간주한다면 저의 세대가 공유했던 신체정신상관적인 감각으로 말씀드릴 때 오늘의 한국을 지옥으로 보는 것은 진짜 지옥이 어떤 것인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아서 생긴 현실인식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듭니다. 저 자신은 한국전쟁(6.25전쟁) 동안에 고등학교 3년을 산중에 피난한 상태에서 지냈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나라와 겨레가 온통 물리적인 의미에서나 정신적인 의미에서 그야말로 폐허였습니다. 폐허가 저의 원초적 경험입니다. 그 후에 저는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과 마음을 터놓고 세대 간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어보는 가운데서 체감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대감각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상황이 좋던 나쁘던 주관적 감식은 그것과 무관하게 형성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교육과 경험의 축적에서 희망을 체득할 수 없으면 현실이 지옥으로 감득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이태리의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의 입구에 ‘무릇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먼저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라는 말을 붙여놓은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지표나 생활수준이 저의 젊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좋아졌는데도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희망을 갖고 보다 나은 미래를 그리게 될 수 없다면 그들에게는 지옥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것은 결국 현재세대의 주류가 장래세대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 한데서 연유된 점이 적지 않다고 자책하지 않을 수 없어서 장래세대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구상하고 실천에 연관시키려고 저 나름의 노력을 해왔고 그것을 한국 충북 청주에서 동양포럼을 통해서 한중일을 아우르는 지방 간, 세대 간 미래공창의 인문학으로 발전시켜보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관심을 갖고 협조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거대담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감각에 맞는 비근한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가까운 데에서 일궈나가는 미래학이고 장래세대학이 되어야 보통 사람들도 진지한 관심을 갖고 함께하려는 의욕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차원에서도 접근하지만 동시에 피부감각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도 접근하는, 양 방향적 접근이 되어야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대학에서도 해야 하지만 일반 대중 속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해야 할 긴급과제라고 느끼고 있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리/조성환·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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