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순 <충북지방중소기업청장>

박용순 충북중기청장

#장면 1.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전날.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 버스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사러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눈이 퉁퉁 부어 들어오는 고등학교 1학년인 누이와 마주쳤다. 부모님이 놀라 무슨 일이냐 물으니, 오는 길에 시장 한 켠에 철제 우리에 갇혀 잔뜩 겁먹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던 ‘우리 개’를 보았단다. ‘우리 개, 쭈쭈’. 쭈쭈는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영문도 모른채 육거리 시장의 개장수에게 팔린, 수년을 기르던 잡종견이었다. 당시 잡종견, 일명 똥개들은 쉬이 사고 팔렸고,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것도 금기시 되던 때였다. 지금은 애완견을 거쳐 반려견으로 그 견격(犬格)이 높아졌지만, 당시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이해가 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쭈쭈에게 목줄을 하고 시장으로 팔러 나가시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어렸을 때 잘 울었던 나는 쭈쭈가 팔려나가는 것을 상상만 해도 눈물을 찔끔하곤 했는데, 막상 팔려가는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며 울지 않았고, 참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과자 사러 나간다던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놀이터에서 두 시간이나 혼자 울다 들어왔다.

#장면 2.
대학교 때 우연히 맹인안내견(맹도견)에 대한 글을 마주했다. 맹도견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한 날, 나는 맹도견 훈련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 때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었고, 개를 좋아했던 나는 운명처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개 훈련! 이것이 바로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삼성화재에서 공익차원에서 운영하던 안내견 학교에 연락을 하여, 어떻게 하면 훈련사가 될 수 있는지, 자리가 있는지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연락을 취하고 소식을 접하곤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더 이상 맹도견 훈련사는 뽑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낙담한 채로 그 꿈을 접었다.

#장면 3.
사무관 2년차에 주말이면 경북 경산을 들락거렸다. 경산에는 삽살개 농장이 있었고, 경북대와 함께 삽살개 혈통 보존에 힘쓰고 있었다. 그 삽살개 농장에 일자리를 얻은 것이다. 맹도견 훈련사의 꿈을 접은 후,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를 보고 직장을 잡은 그 때까지도 개와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을 계속 알아보아 왔던 것이다. 삽살개는 그 성정이 유순하고 순종적이고 충성심이 강하여 자폐아 치료견으로서도 가능성이 있었고, 심지어는 토종견인 삽살개를 견공들이 대접받는 서구쪽에 수출할 꿈도 꾸고 있었다. 수습기간 3개월 초봉 50만원, 정식 훈련사가 되면 100만원 정도. 부모님은 당연히 강하게 반대하셨고, 직장에서도 황당한 녀석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충격을 받으신 아버지는 경북대 교수님과도, 직장상사와도 통화하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또 꿈을 접어야 했다.

#현재 장면.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지금, 개를 키우고 싶지만 아내가 반대한다. 냄새 나고, 변은 누가 치울 것이냐며. 아들 둘도 개를 키우자고 조르고 나를 포함하여 남자 세 명이 개를 기르는데 찬성하지만, 단 한명의 여자가 반대한다.
다수결로 해도 무려 3:1인데 이를 관철시킬 수 없다니,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하지만 가정에서만큼은 한명의 절대 권력자를 이길 수는 없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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