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중부대 교수)

▲ 최태호(중부대 교수)

 폴리페서(politics+professor)는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폴리페서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정부 기관에 프로페서(전문가, 교수)가 들어가서 좋은 정책을 많이 내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다만 우리나라는 학연과 인연, 지연 등으로 얽히면 그것을 이용해서 너도 나도 줄을 타고 올라가려고 하고, 자칫 그 줄이 끊어져질 경우에는 낭패를 본다. 애초에 줄을 끊어버렸으면 아무런 의혹이 없을 것인데, 그것을 이용해서 올라가고 또 다른 사람들을 그 줄에 무리하게 연결하려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학연으로 얽힌 교육사회가 진급의 불만으로 문제가 야기되기도 하였고, 지연으로 꼬인 정계는 해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이나 미국도 지연과 학연이 성행하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무턱대고 학연과 지연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선거 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해서 열심히 응원하고 선거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이것이 선거 후까지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선거에 도움을 주어 일정부분 공을 세웠으니 자리를 부탁하거나 선거 때 알게 된 은밀한 이야기를 빌미로 청탁에 활용해서는 더욱 안 된다. 좋은 후보가 당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서 도와주고, 선거가 끝나면 평상으로 돌아가 당선자의 눈에서 멀리 있는 것이 투명하다. 이것이 참다운 민주사회이고 성숙한 민주시민의 역할이라 하겠다.
 필자는 여의도에 드나들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선거의 기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사정과 선거판의 비정함 등을 몸으로 체득하면서 익히고 있다. 혹자는 이런 필자를 폴리페서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여의도에 올라가 참여하면 도움이 되는 부분이 더 많다. 특히 요즘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내용을 주된 논제로 다룬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미래 시대에 관해 난상토론을 하고 제일 좋은 방안을 채택한다. 헌법학자와 한학자가 토론을 하고, 수질오염에 관해 전문가의 발표 후 교육학자나 사회복지학 전공자가 가감 없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비전문가와 전문가가 모여 토론하다보니 서민들의 이야기 같은 모습도 보인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전형적인 토론-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는 플랫폼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여의도 토론장이 플랫폼이 되는 순간이다.
 교수라고 해서 모두가 교양인은 아니다. 오히려 고집이 세고 아집에 사로잡힌 교수들도 많다. 우리 교수들끼리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테러범하고는 협상(negotiation)이 가능하지만 교수들과는 협상이 안 된다.”는 말은 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이렇듯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인간적인 면이 다소 부족할 수도 있음을 인식하면서 전문가 집단의 한계와 특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전문가 집단은 이렇게 세상물정에는 문외한 일 수 있으나 그렇게 때문에 보다 이상적인 정책들을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 집단은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나라를 위해서 활용할 때 더욱 빛을 바랄 수 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최고의 지식을 발휘한다면 이보다 좋을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해서 같이 줄을 타려고 하고 또 흔들어 대는 것이 문제다. 교수 중에는 국정에 참여했다가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열심히 연구하는 분들도 많다. 작금의 사태를 통해 돌이켜보면 청와대 수석으로 들어갔다가 인간관계에 실패하여 수의입고 가슴에 번호판을 달고 있는 교수들이 꽤 있다. 바로 이들로 인해 순수학문경험으로 현실정치를 위해 모인 폴리페서들이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도움과 청탁의 고리를 스스로 끊고 관계와 인연을 현실적으로 모른채 하기란 쉽지 않다. 오랜 세월 함께 한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기란 우리의 정서상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이제 필요하다. 청탁을 하지 않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스스로 청탁을 배격하는 절제되고 용기있는 폴리페서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가르치는 직업을 갖는 사람은 어떤 시대 어떤 사회든 존경 받아야 한다. 과거의 관행이 오늘날에는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부분 만큼은 폴리페서가 반드시 주지해야 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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