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미숙 충북도 유기농육성팀장

대부분의 워킹맘들처럼 필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족들의 먹거리 해결을 위해 장을 보게 된다.

장을 보러 갈 때면, 동네 슈퍼에서 간단히 살까? 차를 움직여 조금 떨어진 중형마트로 갈까? 아님, 드라이브도 할 겸 좀 멀리 대형마트로 갈까? 장을 보며 재잘재잘 말친구가 돼 줄 딸이 없는 나는 늘 고민을 하게 된다. 사실 장보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카트를 끌며 선택한 품목을 담고, 계산하고, 무거운 장 꾸러미를 들어 집으로 옮겨, 냉장고나 서랍장에 정리해야 끝이 난다. 조금은 귀찮은 이런 일련의 과정과 상품의 다양성, 신선도, 가격 등을 생각해 중형마트로 결정.

마트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요즘 한참 꽂혀있는 양배추를 집어 든다. 가격은 1/2크기의 덩어리가 1960원. 추가로 콩나물, 두부, 제철 과일을 고른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더 큰 덩어리의 양배추가 1860원? 헉! 크기는 훨씬 작은데 왜 처음 집은 양배추가 더 비쌀까 꼼꼼히 다시 보니 먼저 잡은 작은 양배추는 유기농 인증제품이었다.

크기를 놓고 환산하니 1030원이나 차이가 난다. 어느 것을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유기농산물에 대한 농업인들의 노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쉽사리 바꿀 수가 없다. ‘그래 내가 먹을 건데, 우리 가족이 먹을 건데, 어차피 큰 거 가져가도 다 못 먹고 버리게 될 텐데’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1030원이 의미하는 가치’를 선택한다.

집에 돌아와 무거운 장 꾸러미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잠시 쉬면서 TV를 켠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앞두고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나와 생활 속에서 나만의 지구 지키기 실천사례를 하나씩 소개한다.

‘종이컵 안 쓰기’, ‘샴푸 대신 비누로 머리 감기’, ‘화장솜 재활용하기’ 등 각자의 삶 속에서 환경보전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온전한 지구를 위해 소신을 가지고 지켜나가는 습관들을 소개한다. 그 중 한 자연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말한다. “전 유기농 쌀을 먹습니다. 농약을 치면 그 땅은 물론 주변 생태계까지 오염됩니다. 유기농 쌀의 수요가 늘어나면 그만큼 유기농업이 활발해질 것이며, 농약을 치는 농가도 줄어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터뷰를 보면서 조금 전 선택의 문제에 부딪혔던 양배추 생각이 났다. ‘나도 오늘 하루 지구 지키기에 동참했구나’라는 생각으로 뿌듯해 하면서 장 꾸러미를 하나하나 펼쳐 냉장고와 수납장에 정리를 한다.

‘환경운동의 어머니’로 평가받는 미국 여류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1907~1964)은 1962년에 발표한 ‘침묵의 봄’을 통해 ‘기적의 살충제’로 불리던 DDT 등 화학 살충제가 실제로는 생태계를 참혹하게 파괴한다는 점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침묵의 봄’ 발간 직후 미국에서는 DDT 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등 생태주의에 입각한 환경운동이 태동했다.

1970년에는 캘리포니아 원유 유출사고가 도화선이 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자연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지구의 날’이 제정되기도 했다.

굳이 사회적 이슈를 외치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환경을 보전하는 윤리적 소비, ‘1030원의 가치’에 소비자의 관심이 모아진다면 우리 후손에게 정말 아름다운 지구를 온전히 건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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