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 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오늘 든집 이장의 거취에 대해 안노인들의 회의가 있는 날이다.
 ‘든집’은 ‘들어온 집’이라고 해서 동네할머니들이 줄여 붙인 말이다. 지금의 이장내외가 4년 전에 이 동네로 들어왔다. 서울서 퇴직을 하고 시골생활을 하러 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들어온 지 한 닷새쯤 됐을 때 동네경로당할머니들이 이 집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서울양반네가 뭐이 좋다고 시골구석으로 왔을꼬.” “아직 오십 중반으로 보이는 내우가 희멀끔하게 생겼드라닝께.” “당구렛집이 살던 그 다 쓰러져가는 집을 중창한다고 두 내우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 꼴이 말이 아녀.” “얼매나 살고 가려는지 두고 볼 일여.”
 옛날에, 상전에 대해 하인이나 하녀들이 자신을 낮추어서 ‘쇤네(소인네)’ 라고 일컬었었다. 이에서 나온 말로, 자기 스스로 쇤네라 일컬으면서 비굴하게 아첨하는 걸 ‘쇤네를 내붙이다’라고 했는데, 이 든집의 사내가, 쇤네를 내붙이는 사람이라고 경로당할머니들이 또 한마디씩이다. “그 든집 사내 말여, 속이 훤히 보여 나 같은 시골구석 쭈구럭밤송일 언제 봤다구 그저 길거리서 만나믄 허리가 휘도룩 굽실대면서 안녕하시냐구 안녕하시냐구 인사를 해대니 내가 면구스러웠다니께.” “집이한테두 그러는감. 그게 다 알랑방구 같어 그렇지 않구서야 끼끗한 서울 사람이 그렇게 지를 낮출 수 있남 수상혀.” “틀림없이 뭐가 있을껴. 고연히 우리 촌할망구들을 추어주지는 않을껴. 정신들 바짝 차리자구.” 그랬는데 하루는 이 사내가 박하사탕이며 찐빵을 한 아름 안고 경로당을 찾아왔다. “어머님들 안녕들 하셔요. 이렇게 어머님들이 다 모이신 자리는 처음이네요. 마침 오늘이 장날이라 장 구경 좀 할 겸 나갔다가 어머님들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 박하사탕하고 찐빵을 좀 사왔습니다. 찐빵은 아직 말랑말랑하니까 잡수실 만 할꺼야요.” “먹기야 없어 못 먹지유. 근데 서울사람이 시골 와서 살아갈 만 하우?” “시골이 좋아서 오긴 왔는데 아직 서울뜨기라 모르는 게 많습니다.” “뭐유, 참 웃기는 양반이네 서울뜨기유? 시골뜨기 촌뜨기 란 말은 들어봤어두 서울뜨기란 처음 들어보우.” “시골에 살면 시골뜨기고 서울에 살면 서울뜨기지요. 여기 충청도 말을 충청도사투리라고 하고 서울말은 서울사투리라 하구요.” “앗다 그 양반 재밌는 양반이네 듣고 보니 그럴듯하우.” 이후, 이 사람은 무슨 날도 아닌데 수시로 집에서 기르는 닭이 낳은 거라며 찐 달걀을 가져 오는가 하면 서툰 농사로 지은 거라며 감자며 옥수수 등을 가져오기도 하는 거였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이 사람에게 경계심을 푼 것은 들어온 지 1년이 다 돼가는 이듬해 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홀로 사는 할머니들의 집을 찾아 고등어도 한 손씩 사다 주기도 하는가 하면 읍내나 군에서 행하는 각종행사에 자기 차에 태워 갔다 오기도 해서 한결 임의로워졌는데, 그날은 경로당으로 음료수를 한 박스 들고 왔다. “어머님들, 객지로 자식들 다 보내고 적적들 하시지요. 그래도 자주 와 뵙지 못하는 자식들 나무란 적 없지요. 오히려 시골서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도회지로 나가서는 장가들고 시집가서 내 자손들 낳은 자식들이 대견하지요. 그래요 부모들 마음은 다 그렇습니다. 자식들 마음도 다 마찬가집니다. 부모님들 잊은 게 아니에요. 더구나 홀로 계신 어머님들 생각으로 한 날 한 시도 맘 편한 날이 없을 겁니다. 다만 살기에 바빠서 살림에 쪼들려서 짬을 낼 수 없어서 그럴 거예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부모님 돌아가시니 인제 후회가 됩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자주 못 내려오는 자식들 이해하시고 꿋꿋하게 오래 사셔야 합니다.” 할머니들은 이에서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동안 남들은, 자식들 길러야 다 소용없어. 아무리 바뻐도 그렇지 하나밖에 없는 제 엄마를 몰라라 해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들! 하고 얼마나 수군대며 욕을 했던가. 그래서 이후 할머니들은 든집의 사내를 의지하면서 못 보는 날은 허전한 마음으로 지냈는데, 마침 당시 동네이장이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돼 이장자리를 내놓는 바람에 할머니들이 울력해 든집의 사내를 이장으로 추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장이 요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선, 이제 시골에 싫증이 나서 온다간다 없이 슬그머니 뜬 것이 틀림없다고 수근 댄다. 그래서 이에 할머니들이 오늘 긴급히 회의를 연 것이다. 그 결과, 여태까지는 우리가 그에게 의지만 한 것 같으니 언제고 짐 싸러 돌아오면 그때는 꼭 붙잡아두고 내 자식처럼 돌봐주자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사실은 서울의 딸이 출산의 진통을 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그들 내외가 긴급히 올라간 것이고 출산하는 걸 보고 곧 내려올 거라는 걸 할머니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