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상무이사겸 편집국장)

▲ 김영이(동양일보 상무이사겸 편집국장)

대한민국은 최근 수년동안 첨예하게 대립해 온 좌우 이념대결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다. 자기 의견과 맞지 않는다고 툭하면 종북세력, 빨갱이 아니면 극우나 보수 꼴통으로 몰아 세우는 식이 그렇다.
이런 이념대결은 임시정부와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에서도 진행형이다.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일이냐, 건국절이냐 하는 논란은 박근혜 전 정권이 촉발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의 역사관, 특히 임시정부를 둘러싼 역사인식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진보 갈등, 나아가 국론을 분열시키는데 일조했다. 심지어 정부수립기념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선 종북세력으로 몰고 심지어 빨갱이 덧칠을 하는데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면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 김영관(91) 옹이 박근혜 전 대통령 면전에서 쓴소리를 했겠나. 김 옹은 지난해 광복절을 앞둔 8월13일 박 전 대통령 초청 오찬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에 출범했다면서 이 날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주장은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은 광복 70년이자 건국 67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한 것을 겨냥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며 “이런데도 건국절이라고 한다면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면서 독립투쟁을 과소 평가하고 국란때 나라를 되찾으려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은 이틀 후 열린 광복절 경축사에서 또 ‘건국 68년’이라고 말했다. 마이동풍이다.
헌법에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박근혜와 그 정권은 왜 이 헌법을 부정하려 했을까. 국가는 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웃지 못할 사태를 자초했나.
해답은 국정 역사교과서에 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대국민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으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기술된 역사교과서가 있다. 마치 대한민국은 국가가 아니라 정부단체가 조직된 것처럼 의미를 축소하는 반면 북한은 국가 수립으로 건국의 의미를 크게 부여해 오히려 북한에 국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의미를 왜곡, 전달하고 있다.”
단순히 북한과 비교한다면 이 말에 일리도 있다. 북한은 국가로 출발했는데 우리는 단체로 출범한 것처럼 비쳐져 자존심 상할 법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우리로서는 임시정부를 하나의 독립운동단체가 아닌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승만 정부수립후인 1948년 9월1일 발행된 1호 관보에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명시된 것이 말해준다. 다시말해 1948년 8월15일은 건국절이 아닌 정부수립기념일인 것이다. 국가가 있는데 또 건국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1948년 8월15일 건국했다고 주장한다면 헌법에 반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적행위이자 남한과 북한이 대등하게 국가를 수립한 것이 된다. 어찌보면 이를 알고 가만히 있는 어버이연합이나 일베 등 보수단체들이 종북세력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고리를 끊고 싶어 할까. 친일부역자를 둔 조상과 자신에게 붙여진 친일부역자 딱지를 떼고 싶어서 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한 대선 후보의 역사관이 의심받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지난 4월13일 열린 대선 후보 첫 TV토론회에서 “위안부는 우리 정부가 없을 때 생긴 일”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긴장해 얼떨결에 한 말인지는 몰라도 대통령 후보로서의 역사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문제는 안 후보의 역사인식이 여기에 그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4년 전인 2013년 8.15 광복절 메시지에서도 ‘광복 68주년 건국 65주년’이라고 표현했다. 역사관이 4년 전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이 국가의 근간인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대통령 후보로서 가당치 않은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1948년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는 거 하고 다를 게 뭔가. 안 후보의 해명은 그래서 꼭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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