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시인)

▲ 나기황(시인)

#곡우1: 지난 17일 0시를 기해 19대 대선선거운동이 공식으로 시작됐다. 바야흐로 ‘장미대선’으로 가는 출발신호에 맞춰 15명의 주자들이 일제히 스타트라인을 떠났다. 5월 9일 피니시라인까지는 20일 남짓하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1등을 향해 달려야 한다. 박수도 받고 야유도 들을 것이다. 응원하는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고 언성을 높이고 상대편을 흠집 내기도 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앞서가는 사람 다리라도 걸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지금으로선 1~2등이 빤한 경기로 싱거워보여도 결과는 알 수 없다. 뚜껑을 열어봐야 확실한 게 선거고, 막판까지 가봐야 아는 게 대선이다.
오늘은 농사비가 흠씬 내린다는 곡우(穀雨)다. 봄의 마지막 절기이자 '여름(夏)에 든다(入)'는 입하(立夏)까지 보름을 남겨놓은 시점이다. 대선정국과 맞물려 있어 의미가 새롭다.
저마다 볍씨를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대선정국에 뛰어들었지만 대한민국 정치풍토에서 5년 농사가 만만치 않다. 맛도 좋고 소출도 많이 난다면야 무슨 걱정이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안보 어느 한 가지 제대로 된 모종을 가려내기 힘들다. 저마다 심을 때는 그럴 듯 해 보여도 수확할 때쯤이면 뽑아내야 할 ‘피’가 더 많다면 헛농사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올해는 제철도 아닌데 서둘러 심어야 하는 탓에 ‘장미대선’이라는 이름값이나 할지 걱정이다.

#곡우2: 지난 4월 16일은 우리들 마음속에 슬픔의 찬비(哭雨)가 추적추적 내린 날이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았다. 팽목항의 억울한 혼령들이 소리 없는 곡(哭)으로 밤바다를 떠도는데 다시 한 번 유족들은 비에 젖은 흙 담처럼 무너져 내려야했다.
참사 1091일 만인 지난 11일, 진도 앞 바다 맹골수도에 잠겨있던 세월호가 왼쪽으로 누운 채로 목포신항 철재부두 위에 안착했다. 인양작업에 착수한 지 613일만의 일이다.
3년 전 4월 16일, 침몰하는 세월호에는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일반승객 104명 등 총 476명의 생목숨이 타고 있었다. 그 중 172명이 구조됐고 304명이 사망했으며 미수습자는 9명이다. ‘곡우(哭雨)’를 맞으며 유족들은 미수습자의 시신수습과 ‘진실규명’이라는 새로운 기다림의 국면을 맞게 됐다. 3년 만에 인양 된 세월호는 녹이 슬고 ‘뻘’이 차고 찢겨져 나가고 무너져 내린 채로 아직도 인양되지 못한 진실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벽곡(?哭-남자가 가슴을 치며 우는 것)’과 ‘용곡(踊哭-여자들이 몸부림치며 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곳곳에서 가라앉고 있는 수많은 세월호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노란리본에 적힌 대로 “우리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가 정답이다.

#곡우3: 노래(曲)처럼 반가운 봄비를 ‘곡우(曲雨)’라 한다면 틀린 말일까. 물론 지어내 말이지만  연초록 잎사귀가 돋아나는 파릇한 이 시기에 내리는 비를 ‘곡우(曲雨)’라 해도 괜찮을 듯싶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1981년 UN총회에서 선포한 ‘세계 장애인의 해’를 기념하여 우리나라에서도 1981년부터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 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도 2000년부터 장애인들의 복지와 인권에 대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완전한 사람, 완전한 사회는 없다. 편견과 차별, 불공정과 불평등이 없는 사회가 장애가 없는 사회다.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가 장애가 없는 사회다. ‘곡우’는 삶의 전반에 걸쳐 모습을 달리하며 내리는 비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봄이 가는 마지막 절기, ‘곡우’의 시기에 정작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장미대선-‘오월 어느 날 (5/9) 그 하루 무덥던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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