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정래수 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또다시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총체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방사성폐기물을 처분 절차에 따르지 않고 무단 폐기하고, 허가조건을 위반해 제염과 소각시설을 이용했을 뿐 아니라 방사능 측정수치 등 중요 기록을 조작·누락하는 등 안전 불감증과 연구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원자력연구원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한 해 수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원자력연구원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 원자력연, 방사성폐기물 무단폐기 추가 확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연구원의 방사성폐기물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원자력안전법 위반 사항 24건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2월 발표된 12건을 포함하면 원자력연구원의 위법 사항은 총 36건에 이른다.

조사 결과를 보면 원자력연구원은 제염실험에 쓴 콘크리트를 일반 콘크리트에 섞어 폐기하는가 하면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물을 무단 방류했다. 또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사용한 장비들을 무단으로 매각했고, 실험 후 남은 방사성폐기물을 원자력연구원 안에 방치했다.

중요한 기록을 조작하기도 했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의 감시기에서 경보가 울렸지만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고 경보 기록을 수정했으며, 감시기를 가동하지 않고 작업한 경우도 있었다. 방사성폐기물 양이나 정보를 허위로 기록하거나 누락시키는가 하면 방사성물질인 우라늄 제염시설에서 세슘, 코발트 폐기물을 제염했으며 허가량의 2배가량을 제염한 사례도 적발됐다. 오염토양 제염기술 시험 때엔 방사능 농도를 연구목표 이하로 맞추기 위해 일반 토양을 섞어 연구를 진행했다.

원안위의 점검 과정에서 원자력연구원 측이 전·현직 직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회유하고,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등 조사를 방해한 사실도 드러났다.

원안위는 오는 28일 원자력연구원에 대한 행정처분안을 확정한다. 처분안에는 과징금뿐만 아니라 업무정지도 포함돼 있다. 또 조사를 방해한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 "원자력연 감시기구 설치해야"...대전시 ‘정부 차원의 철저한 수사와 처벌 요구’

원자력연구원의 방사선폐기물 무단 폐기가 또다시 사실로 드러난 가운데 연구원을 감시하는 지역 환경감시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환경감시기구는 원자력발전소 주변에만 설치돼 있고 대전 원자력연구원과 같은 연구시설은 제외돼 있다.

대전시와 시의회, 시민환경단체 등은 최근 방사선폐기물 무단 폐기 사건 이후 일제히 관련법 개정과 민간환경감시기구 설치 등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 연구원측과 합의한 시민안전성검증단 운영보다 한발 더 나간 주장이다.

한편 대전시는 또다시 발생한 원자력연구원의 불법행위와 관련 ‘대전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롱한 처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정부 차원의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대전시는 조사결과에 대해 위반행위를 가리고, 속이고, 철저히 짜 맞추는 등 기획되고 의도된 위법행위라고 규정했다.

또 금속용융시설에서 52톤이나 되는 세슘과 코발트로 오염된 폐기물을 용융하고, 10톤이나 되는 중저준위 폐기물을 용융하는 등 위반행위의 수준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가연성폐기물처분시설과 용융로는 원자력연구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에도 시민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만큼 해당 시설의 운영을 즉각 중단하고 장기적으로는 폐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원자력연구원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과를 비롯해 철저한 수사와 관계자 처벌, 위법사항에 대한 철저한 시민검증 수용과 협조, 진출입 차량 방사능측정시스템 조기구축 등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정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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