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법의 날]
'법원의 입'…‘판결’ 아닌 ‘입’으로 말하는 판사
“밤낮 없이 기자 상대…보람 있으나 짜증도”
법원 행사·행정업무…참여인원 섭외는 ‘난제’

판사들의 주된 업무는 재판이다. 그러나 주 업무가 재판이 아닌 판사가 있다. 바로 기획·공보판사다. ‘법원의 입’인 이들은 시민과의 접촉은 많지만 그만큼 이들이 하는 일은 밖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동양일보는 54회 법의 날을 맞아 기획·공보판사의 업무와 역할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기획·공보판사는 법원을 대신해 언론에 법원의 일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법원의 입’인 셈이다. 공보판사는 판결 기사의 의미와 취지, 법원 행사들을 언론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기획법관은 시민과의 소통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는 등 행정업무를 담당한다. 뉴스나 법원 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들이지만 이런 역할을 하는 판사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실 전국 법원에 공보판사가 지정된 것은 10년이 넘었다. 1993년 대법원 공보관 직제 신설로 시작됐고 2006년부터는 전국 각급 법원에 공보판사가 지정되며 확대됐다.

서울고법이나 서울중앙지법 등 규모가 큰 법원에선 공보판사와 기획법관이 나눠져 있으나 대부분의 지방법원에선 공보판사가 기획업무를 겸한다. 지원에서는 보통 지원장이 기획·공보업무를 맡지만 일부 지원의 경우엔 따로 공보관 등을 두기도 한다.

공보판사는 ‘법원의 입’이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불문율에 따라 시원스럽게 말하지 않는 재판부 대신 판결에 오해가 없도록 판결 취지나 사실관계 등을 설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만큼 공보판사는 기자들과의 접점이 많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판결 취지나 사실관계가 기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충분히 답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슈가 되는 큰 사건의 경우엔 하루에도 수십여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밤낮없이 기자에 시달리다 보면 피곤하고 짜증날 때도 있다. 청주지법 공보판사를 지냈던 A판사는 “알려줄 수 없는 내용을 얘기해달라고 떼(?)를 쓰거나 판결취지나 사실관계 일부를 강조해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솔직히 얄미웠다”고 말했다.

기획법관은 시민과의 소통과 관련한 여러 행사들을 펼친다.

25일은 법조계의 가장 큰 행사인 54회 ‘법의 날’이다. 이날 전국에서 법과 인권의 진정한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의미 있는 기념행사가 이어진다. 청주지법에서 일반 시민들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역할을 직접 체험해보는 그림자배심원이 열리고 있다.

그만큼 법관과 직원들의 지원이 필수다. 법관과의 대화, 지역 장애인 예체능, 로스쿨 공동학술행사 등을 기획하고 알리는 역할을 한다.

법관이 재판이 아닌 다른 행정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처음엔 적응이 어렵다. 특히 어려운 점은 ‘섭외’다. 행사 참여 등 지원할 사람들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공보판사 출신의 B판사는 “공보·기획판사를 2년 정도 했는데 부탁이 많아지다 보니 주변 선·후배들이 자신을 피하는 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기획·공보판사는 보통 해당 법원 법원장이 지명하며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년 정도 역임한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이들은 보통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단한 단독심이나 본안 외 사건 등을 맡는다.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하고 행정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법관 입장에서는 일하기 쉽지 않은 자리다.

힘들고 화나는 일도 있으나 기획·공보업무는 판사 개인에게도 소중한 경험이다. 기자와 시민들을 통해 법원 안팎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재판이나 판결문 작성에도 도움이 된다. 재판에서는 겪기 힘든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청주지법 기획·공보판사는 “각종 행사 기획업무에선 재판 때와 달리 법원 안팎과의 ‘조율’이 중요하게 작용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다”면서도 “재판만 하면 잘 모를 수 있는 법원 전체를 보며 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에다 직원들의 고마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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