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 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음성 출장길에 나서 고속도로를 천천히 달리다 오디오 버튼을 눌렀다. 평소 즐겨 듣던 CD에서는 마침 유리창에 흐르는 빗줄기를 노래하듯 리듬 오브 더 레인(Rythm of the Rain)의 애잔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소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노랫말을 담은 이 노래는 비가 올 때면 학창시절 음악다방에 앉아 신청하던 단골 메뉴였다. 지금처럼 음원과 오디오 플레이어들이 흔치 않았던 시절 좋아하는 신청곡이 나오길 기다리며 얘기꽃을 피우던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연녹색을 띠며 새롭게 돋아난 풀잎과 새싹이 봄비를 머금어 짙은 녹색의 침엽수를 배경으로 더욱 싱그러워 보였다. 푸른 잎 사이로 하얀 꽃 밥을 매단 조팝나무와 연분홍 산벚꽃이 한 폭의 화사한 수채화를 이루었다. 여러 봄꽃을 품은 산야의 모습은 산수도의 낯익은 자연 풍경이었다.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생동하는 봄의 향기를 맡는 사이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조금 일찍 출발하기는 하였지만 교통흐름이 너무 순조로웠기 때문에 약속시간을 40분 이상 남겨두고 있었다. 너무 일찍 가면 담당자들의 일을 방해할 것 같아 시간을 보내려고 근처에 있는 전국체인 유통매장에 들어갔다. 눈에 띠는 대로 생필품을 골라 구매하였다. 물건 값을 계산한 금액이 예상보다 약간 많은 듯 했지만 영수증 내역을 확인하기에는 회의 시작시간을 맞추어가기가 촉박하였다.
  저녁에 우연히 영수증을 정리하다 생각나 확인해보니 맨 앞에 찍혀있는 상품의 가격이 구매 시 기억했던 금액과 차이가 있었다. 그 상품의 영수 금액은 40%를 더 주고 산 셈인데, 다시 찾아가 확인하기에는 먼 곳이라 갈등이 생겼다. 하루를 지나고 그냥 넘길까 했는데 유통업체로부터 일괄 홍보문자가 전송되었다. 포인트 적립으로 인해 전화번호가 공개된 모양이었다. 이참에 전화를 걸어 물건의 가격을 확인하고 착오가 있음을 이야기했더니 영수증을 가지고 매장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지역민이 아니라서 언제 그곳에 다시 갈지 모르며, 그곳에 가려면 차액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환불은 영수증을 지참하고 매장을 방문하라는 말만 반복하길래 매장의 실수로 소비자가 손해를 보거나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불만을 표했더니 관리자 한 사람과 연결해 주었다. 그도 계산 착오는 인정했지만 상품의 진열 장소를 되물으며 여러 변명을 늘어놓았다. 상품의 바코드를 사진 찍어 보내면 추후 처리하겠다며 긴 이야기가 오갔다. 매장에 남은 자료만으로도 상품의 바코드는 확인할 수 있는 일이고, 그 상품의 가격을 정확하게 계산했는지만 확인하면 될 일인데 점점 불편을 가중시키고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직원의 실수인지 계산시스템의 문제인지를 확인해 보고 처리를 해주겠다는데, 그게 소비자가 확인할 일인가? 그냥 손해보고 말 것을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요구한 대로 상품의 전면 사진과 바코드, 영수증을 사진 찍어 보냈는데 하루 지난 뒤 연락하더니 언제든지 매장에 들르면 환불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방문을 요하는 것이어서 더 이상 이야기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그러마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불쾌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수년 전에 보은에 갔다가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곳 관리자는 전화로 확인 후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매장 직원이 바코드를 잘못 찍어 벌어진 일이라며 해명하고는 계좌이체로 환불해 주면서 거듭 사과를 하였던 일과 크게 대조되었다. 그는 매장의 기록만으로 확인한 뒤 번거로운 매장방문이나 다른 증빙자료도 요구하지 않았다.
  변명(辨明)은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까닭을 말하는 것이고, 해명(解明)은 까닭이나 내용 따위를 풀어서 밝히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의 검증과정에서 여러 의혹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진정성을 가지고  변명 대신 명확한 해명을 할 때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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