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길 <소설가>

정안길 (소설가)

어느 해 봄날 조여드는 가슴을 다독거리며, 병원으로 달리던 차창 밖으로 눈을 보냈을 때, 산천은 온통 연분홍빛 산벚꽃들로 무리지어 화사하게 물들어있었다.

소생의 계절,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볼록볼록 싹눈이 트는데, 마침 는개가 뿌려져 생기가 넘쳤다.

그해의 봄, 슬픈 추억이 되살아난 그윽한 봄날이 다시 맴돌아와 쨍한 햇볕아래 산벚꽃들은 또 흐드러지고, 젖어든 동공은 마냥 그리로 꽂힌다.

좁다란 전용병상에 반듯이 누워 호흡기에 의지하고, 가쁜 숨소리가 연이었다. 그 거센 호흡소리가 실내를 떠돌지만, 어느 순간 멎을 듯이 가슴을 마냥 조였다. 세상에 태놓은 아들딸들과 동반한 가족들이 눈을 모으고, 뜬금없이 치닫는 마지막숨소리에 기여 눈망울을 적신다.

차창 밖의 그 연분홍빛 흐드러진 산벚꽃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건 필시 환상이었고, 또 이명처럼 들리는 고즈넉이 뻐꾸기울음소리는 환청이었다.

삶과 죽음은 일상일 뿐이고, 자연의 섭리라지만,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다.

생을 떠난 영혼의 꽃과 우짖던 새는 피안의 세계로 돌아가라는 무상명령일 것이다.

올봄도 산벚꽃들은 산야에 흔연히 피어나 은은한 연분홍빛을 산천에 아무렇게나 흩뿌려놓았다.

봄은 다시 맴돌아서 그녀가 떠나던 날처럼 다시금 찾아들었다.

멀리 아주 멀리로 떠난 그 영혼이 돌아왔으리라 믿어지는 건 결코 정든 만큼 흉금 깊이에서 솟아난 마음의 계시인가 보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화사한 꽃잎들은, 내쏟는 개여울에 실려 낙화의 계절로 치달으리라.

채색된 천연은 지워지고, 물에 떠가는 꽃잎들이 뇌리에 떠오르듯 그녀를 사랑하고 정들이었던 사람들의 망막에만 허무로 남아 빛바랜 그 어느 해 산벚꽃처럼 정물로 흩뿌려지리라.

낙화의 계절, 그 뒤에는 마치 꿈속의 꽃들처럼 다시 피어나 저마다 씨알을 여물릴 것이다.

산비탈과 골짜기마다 꽃잎들은 마치 몽유의 미로처럼 아늑한 동산을 연상케 하면서 쥐바람도 불지 말라고 기원할 것이다.

산야에 잎도 트이기에 앞서 화사한 꽃떨기가 무리지어 피우던 날, 비록 떠난 이는 없을지라도, 어김없이 연분홍 산벚꽃들은 피어나리라.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수레자국, 그 망실의 아픔도 다시 도질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