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세계주요 2개국) 틈바구니에서 샌드위치가 된 한국정부의 안일한 외교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중국과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배치를 빌미로 비관세 통상보복을 받고 있다. 믿었던 혈맹 미국으로부터는 성주골프장에 사드포문 2기를 실전배치하자마자 1조1300억원(10억 달러)의 청구서를 받았다. 정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의규정 위반이라고 사전 합의통보를 부인하고 나섰지만 안보를 빌미로 전략무기 수출에 나선 옹졸한 우방의 실리주의를 간파하지 못한 점은 없는지 반성해야 할 때다.
사업가 트럼프는 후보시절부터 끊임없이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한바 있다. 어쩌면 지난 27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사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길 바란다고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은 예견됐던 일이다. 트럼프는 이틀 전 사드 핵심 장비를 경북 성주골프장 부지에 전격 배치한 후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 청구서’를 우리에게 보냈다. 지난해 한·미 양국이 사드배치에 합의할 당시 사드의 운영·유지비는 전액 미국이 부담하기로 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양국의 합의사항을 거스른 것이다.
트럼프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 비용을 대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한국 측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10억달러짜리 시스템이라고 가격까지 매겨서 말이다. 10억달러는 우리 국방예산(올해 40조3347억 원)의 약 2.8%에 달하는 금액이다. 트럼프는 또 한국과의 무역적자를 언급하며 ‘끔찍한’ 한·미 FTA를 “재협상하거나 종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한·미는 SOFA관련 규정에 따라 ‘우리 정부는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 한다’는 기본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외교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바 없다”고 트럼프의 인터뷰 내용을 부인했다. 청와대 김관진 안보실장도 30일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의 전화통화후 소파규정은 변화된 것이 없고 ‘국내정치용’이라며 때늦은 진화에 나섰다.
이 같은 돌발행동은 ‘거래 논리’에 익숙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어느 정도 우려됐던 일이다. 한·미 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앞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협상용 전술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기간에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이 방위비를 더 내야 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규모는 2018년도까지 정해져 있고, 이후 5년(2019~2013년)치 협상은 빨라야 올해 말쯤 시작될 예정이다.
사드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는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유해성 논란과 함께 사드배치 찬반양론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국방부는 그동안 사드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비용은 전액 미국이 부담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뒤통수를 맞았다. 무엇보다 잠잠해지는듯하던 사드 반대 여론이 다시 불붙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부는 먼저 트럼프 발언의 진위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정부의 공식 의사가 확인되면 지난해 양국 합의 내용을 근거로 합리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남북한이 G2에 휘둘리는 것은 어찌 보면 정작 남북교류의 단절에 있지는 않은지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남북 평화의 시대엔 사드배치도 그 비용도 지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든카드 없는 우리 정부의 안보·외교술에 적잖은 실망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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