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최후까지 하늘 향해 고개 꺾지 않는
꽃 한송이 있네
아래쪽 이파리들부터
들었던 두 팔을 서서히 내리고
지친 어깨를 털며 물러날 때
가까운 꽃들마저 흙빛의 질린 얼굴을 하고
빛나던 꽃잎 하나씩
땅에 버리며 돌아설 때
끝까지 제 빛깔 잃지 않으며 서 있는
들녘의 꽃 한송이 있네
그토록 연모하던 하늘마저 몸 바꿔
싸늘히 식은 살갗으로 저녁 바람에 손을 끌려와
무수한 꽃의 목숨을 유린하는 세월 속에서
향기를 버리지 않음으로
끝까지 이름을 버리지 않는
허리 꺾지 않음으로 끝내
살아온 자기 길 버리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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