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 김영이(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사상 초유의 대통령 보궐선거가 문재인 승리로 끝났다. 헌정사에 유례없는 현직 대통령의 파면으로 시작된 조기 장미대선은 ‘촛불’과 ‘태극기’라는 대립과 분열, 갈등 속에 치러져 새 대통령은 이를 치유하고 화합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 새 정부 앞에는 털어내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놓여 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시작된 19대 대선은 예년 선거에 비해 60일이라는 단기간에 그쳤지만 요동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심했다.
우리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유독 한 사람에게 연민의 정이 간다. ‘세계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충청권 대망론 뜻을 펼치지 못하고 20일 만에 중도낙마한 것은 본인과 국민, 나아가 대한민국에 상처가 됐다. 그래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반 전 총장의 경륜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쏟아 붓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은 다행히 아닐 수 없다. 새 정부에서 그에게 어떤 제스처를 취할 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은 초반부터 문재인 대세론으로 출발해 다소 싱거운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안희정(충남지사)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영역을 확장해 나간 것은 앞으로도 주목받을 일이다. 또 거칠게 없었던 안철수의 추격전도 볼만 했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와 안희정의 경선 패배로 갈 곳 잃은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한때 양자대결에서 역전했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그래서 정치권엔 ‘안풍(安風) 경계령’이 발령됐다.
그렇지만 지지율은 급등했던 기울기만큼 추락했다. 개인기를 보여주는 TV토론에서의 부진과 홍준표 후보의 상승세 등과 맞물려 지지충이 빠져나간 것이다.
그러는 사이 홍 후보가 치고 올라왔다. 특유의 거친 입담으로 궤멸 직전인 우파·보수진영을 자극하며 독주하는 문재인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한반도 4월 위기설은 홍 후보에 날개가 됐다.
그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구설에 휘말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뇌물 먹고 자살’, ‘세탁기에 돌려야’, ‘강에 빠져 죽자’, 과거 ‘돼지 흥분제’, ‘(장인을 향해) 영감탱이’ 등 거침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TV토론회나 유세장 등 공개된 장소에서 저토록 막말을 하는 데는 아직도 검사인 줄 착각하거나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기 때문이 아니냐고 비난했다. 아무튼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에 호소해 표를 모으고 상대 후보를 친북좌파로 몰아세우며 좌우 색깔론 구도로 끌고 간 결과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사이다 화법이 어필한 것이다.
숨 가빴던 대선 레이스는 끝났다. 정치인들도, 국민들도 들뜬 자리를 박차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정심을 되찾아야 한다. 특히 이번 대선은 국정농단이 가져온 촛불,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 태극기 저항 등을 거치며 분열과 저주, 편가름 속에 치러진 만큼 이를 치유해야 할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물론 적폐 청산, 변화를 요구하는 촛불의 민심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갈기갈기 찢겨진 국론 통합이다. 완벽한 통합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내가 아니면 모두 악’이라는 식의 편가르기 사회는 더 이상 안돼야 한다.
그래서 새 대통령부터 낡은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협량의 계파 패권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협치는 필수다. 지금의 정치지형으론 협치를 하지 않으면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없다. 대통령과 경쟁관계였던 후보들, 정치적 앙숙들도 이젠 훌훌 털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  
탄핵의 기저에는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민생파탄이 있다는 것을 부인 못할 것이다. 탄핵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한번 탄핵을 경험한 국민들로서는 정치권이 또 무능하거나 갑질을 보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탄핵할 수 있다. 그렇다고 탄핵의 역사가 반복된다면 비극이다.   
정치인들 보고 지하철이나 자전거 타고 출·퇴근 하라고 까지 요구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가진 자들이 먼저 베푸는 뚤레랑스의 실천은 필요하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이라고 하는데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
자동차도 커야 하고, 집도 커야 하고, 프로필도 더 화려해야 하고, 밑에 사람이 알아서 기기를바라고, 아래 사람위에 군림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적 문화가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적폐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낮은 자, 약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들에게만큼은 꽃길을 안겨줄 수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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