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용준 <충북개발공사 사장>

계용준 충북개발공사 사장

하늘이 맑고 미세먼지도 적은 화창한 어느 날 오후에 모처럼 성안길을 걸었다. 성안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벼 활기가 있었다. 짝을 이루어 즐겁게 대화하며 활짝 웃으면서 걷는 젊은이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들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모처럼 환해지고 젊어졌다. 여기저기 상점에서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틀어놓은 시끄러운 음악소리 마저 정겹게 들렸다. 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 많이 모이고 시끌벅적 해야 제 맛이 난다.

그러나 이런 거리의 밝은 모습이 언제까지나 계속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통계청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2016년 합계출산율은 1.17이라고 한다.

인구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30년 후인 2050년도에는 약 4000만 명 정도로 줄어들며, 100년 후에는 지금의 1/3수준인 인구 규모로 떨어진다고 하니 어쩌다 우리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기는커녕 결혼도 못하고 실의에 빠져있으며, 노년층만 자꾸 늘어나니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본다.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로 20대 후반에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하고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예전 같으면 결혼했을 나이가 훨씬 지난 ‘노처녀’, ‘노총각’이다. 우리 집사람은 본인이 일찍 결혼해서 자식들만큼은 결혼을 늦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걱정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가끔씩 자식들에게 결혼독촉을 하면 “부모님 집에 얹혀서 더부살이해도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하며 들은 척 만 척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 세월들을 되돌아보면 우리 베이비부머는 복 받고 행복한 세대다.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갖고 결혼하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힘들 것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오죽했으면 정부에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같은 구호를 내세우며 산아제한 운동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 아니겠는가.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세대는 소위 방이 세 개 이상인 평수 큰 아파트도 사고 경제적 안정내지 사회적 신분상승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며, 최소한의 노력을 하면 사회의 발전에 따라 더불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쌓아놓은 것을 토대로 우리의 다음세대는 기회가 더 많으며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지금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극히 힘든 소위 흙 수저가 버림받은 세상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모두들 자녀들을 뒤떨어지지 않도록 키운다고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시키고 과외니 스펙이니 하며 빚내어 투자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자녀들은 밤낮없이 공부는 하는 것 같은데 취업이 안 되고, 운 좋게 어렵사리 취업을 한다 해도 미래가 불안하고 희망이 없다고 한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다 자기 책임이지 누굴 탓할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

성안길 여기저기 대통령후보들의 현수막이 붙어있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길목에는 선거유세차량의 앰프소리가 드높다. 대통령후보들은 저마다 청년들의 문제만큼은 해결하겠다고 공약을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이다. 제발 이번에 뽑힌 새 대통령은 N포 세대들이 취직을 하고 결혼하며, 자녀도 걱정 없이 많이 낳고 기를 수 있는 희망의 나라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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