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 노창선 (시인)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통령 선거는 장미가 피는 계절에 치러질 것이다. 봄꽃들의 향연이 계속되는 길에서 코끝에 맴도는 수수꽃다리 향기인지 장미꽃 향기인지 이끌려 투표장으로 갈 것이다.
  며칠 전 어디선가 문자가 왔다. ‘내일 투표요령! 투표용지가 협소해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준표에 잘 찍’으라는 것이었다. 이게 또 무슨 소리지? 열다섯 명의 후보가 이름을 올렸으니 용지가 길다. 머리를 싸매고 숨겨진 의미를 찾느라 골몰할 수밖에. 드디어 수수께끼가 풀렸다. 문제는 문재인, 준표는 선거관리인이 준 표, 투표용지였다. 준 표의 띄어쓰기를 잘못하고 붙여 쓴 것. 아무튼 또 한 번 웃으면서 투표장으로 갔다. 준 표에다 찍어야지 가져간 표에다 찍으면 되겠어?
 처음에 열다섯 명이 후보로 나섰으니 한 사람에게만 찍기가 아쉬웠던가. 무효표 중에는 문재인에게 기표하고 김선동에게 하나 더 기표한 예가 올라왔다. 누군가는 칸을 물려서 중간  선에다 열셋을 내리 찍은 사람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찍을 사람이 없다고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은 인사도 있었다. 득표율 1위에서 5위까지는 기호의 숫자와 일치했다. 어쨋거나 나는 준 표에 찍었으나 아차차~ 준표에 안 찍었네. 하나 더 찍을 수도 없고.
  이번 선거를 흔히 장미대선이라 불렀다.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촛불과 태극기의 격화된 감정에 찬물을 끼얹고 머리나 식히라고 붙여진, 어찌 보면 매우 선동적인 용어였다. 장미대선? 앞으로 대통령 선거 전국투표율은 기대 이하일 것으로 예측 된다. 매화꽃,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 수수꽃다리, 장미꽃…… 봄꽃 눈 쇼핑 다니다가 날자 까먹고 대통령 쇼핑을 놓칠 것이기 때문이다.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이날저날 징검다리 휴일에 휴가를 섞어 섞어서 해외여행 가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니까.
  아무튼 문재인 1번가는 배송준비 중이란다. 내놓은 상품은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 공공일자리 확대, 임대료 상승 억제, 육아휴직 확대, 공공임대주택 전환, 치매 국가책임제. 주소는 ‘새로운 대한민국 광화문 1번지’란다. 배송지연은 안돼요. 당일배송 좋아요. 나는 SVIP이니까요. 출석체크 하면 몇 점 주나요? 포인트 많이 주세요. ㅎㅎㅎ
  선택은 끝났다. 취임식도 많은 행사를 생략하고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취임선서 위주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보신각 타종행사, 군악 의장대 행진과 예포발사, 축하공연은 생략했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장기간 궐위 된 특수한 상황에 보궐 선거로 치러진 대선이었고 당선 공표 즉시 대통령직에 임해야 하니 각종 의전과 행사를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수위원들 구성과 인수절차도 없이 곧 바로 국정에 돌입해야 한다. 5월 10일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시작일이다. 앞으로 5년, 2022년에 임기가 종료 된다.
  한 일간지의 ‘새 대통령 새 정부에 바란다’라는 코너에서 국민들의 목소리에는 ‘국민통합?청년취업 해결?경제 활성화’ 등의 열망이 묻어난다. 촛불과 태극기로 얼룩진 광화문 전쟁의 불씨는 아직도 살아 있다. 그동안 수없이 회자 되었던 ‘반문연대’가 살아나면 더 큰 덩어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쇼핑몰이 적자로 돌아서고 흔들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의석수가 과반에 못 미쳐 때로는 뜻대로 안되고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앞선 정부들도 여소야대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국민들이 균형을 잘 잡아 가겠지만 쉽지 않다. 문대통령은 한 때 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기도 했던 자유한국당의 동의를 얻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파면시킨 대한민국 현대사는 거듭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세계인들이 주목했던 촛불시위는 영하의 맹추위 속에서도 계속 되었던 시민혁명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굳건히 자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함께 소통하고 통합하고 화합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전 세계의 맥락과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장미의 계절 5월에 그 시민혁명을 완성시키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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