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중부대 교수)

▲ 최태호(중부대 교수)


 살아가면서 나는 참 바보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힘이 센 것도 아니다. 어려서는 몸이 약해서 눈치만 보고 살았고, 나이 먹어서는 공부만하다가 세상물정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늙어버리고 말았다. 인터넷은 범람하는데 세상 물정은 누구보다도 모른다. 스마트 폰을 열어 놓고도 성능을 몰라서 5%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비단 스마트 폰 뿐만 아니다. 제자들은 컴퓨터에 앉아 있으면 ‘ctrl key’나 ‘alt key’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날아다니고 있는데, 필자의 경우는 매번 한다는 것이 복사하기나 붙이기, 블록 지정해서 옮기기 정도밖에 할 줄 모른다. 아이들은 스마트 폰과 컴퓨터를 연결하여 문서를 주고 받는데, 이제야 카톡으로 받은 문서를 컴퓨터로 옮기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도 조교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평생 모를 뻔했다.
 교수가 퇴직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조교 어디갔느냐?”고 돌아보며 묻는 것이란다. 젊은이들의 빠른 적응력을 늙은 교수가 따라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아날로그 원판세대(필자가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철필로 기름종이에 글씨를 써서 시험지를 인쇄했다)가 디지털 세대를 지나 AI의 세대에 접어드니 때로는 무기력함에 빠져들 때가 많다. 출석부를 들고 다니면서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던 시절이 그립다. 지금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가서 앱을 터치하면 아이들과 동시에 출석체크가 된다. 가끔 휴대전화를 가지고 가지 않거나, 꺼 놓은 친구가 있으면 수동으로 다시 정리해야 한다. 30초 만에 출석부르기가 끝나면 아이들과 눈을 맞출 시간도 없이 PPT를 스크린에 올려 놓고 농담도 별로 안 하고 수업에 열중한다. 아이들이 녹화하면서 듣는 친구들이 많아 굉장히 조심스럽게 강의한다. 중요한 단락이 있어 “적으세요.”라고 하면 아이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교수님! 그 파일 복사해서 주시면 안 되요?”라고 한다. 물론 필자는 연구실을 개방해서 누구나 자료 복사해 갈 수 있도록 하고 52기가나 되는 자료를 시간이 있는 사람을 가지고 가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신의 지적 재산권이라 해서 공유하지 않는다. 어렵게 만든 것을 쉽게 소유하고자 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필자는 처음부터 모든 자료를 공유해 왔다. 은사이신 홍윤표 교수님께 거저 주신 것이기에 나도 무한 공유한다. 이런 나를 동료 교수들은 바보라고 한다. 아이들이 쉽게 얻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이다.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필자가 볼 때는 지식이 조금이라도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식을 나눌 뿐이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세월은 길목을 돌아서서 저만치 가고 있다. 나이 숫자와 같은 속도로 달린다고 한다. 사실 가는 속도나 오는 속도는 똑같은데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좌충우돌하다 보면 금방 저녁이 된다. 오늘도 젊은 조교가 없었다면 혼자서 하루를 허비했을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해마다 바뀌는 연말정산 입력과정으로 손해 보는 것이 많은데, 금년에 또 바뀌는 바람에 정신없었다. 국세청 자료 그냥 덮어쓰면 된다고 하지만 작년에 돌아가진 장모님, 퇴직한 아내 등등의 서류를 따로 입력할 줄 몰라서 엄청 고생했다. 내년에 또 어떻게 바뀔까 두렵다. 부단히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과 몸은 따로 놀고 있다. 하기야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내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친구들은 독수리타법으로 한 음소 씩 치고 있는데, 필자는 그래도 자판을 보지 않고도 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런데 독수리 타법의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자판을 두드릴 일이 별로 없단다. 그냥 볼펜을 사용해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그런데 왜 손가락은 다섯 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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