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그런 말이 떠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4시간 동안 보여준 ‘국민과의 소통’이 ‘불통’으로 점철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준 4년 동안의 행보보다 더 질량감이 있었다고. 파격적으로 4개 야당 당사를 찾아 협치를 요청하고,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국민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셀카를 찍는 대통령의 격의없는 모습을 우리는 그동안 보아오지 못했다.
국민들은 지난 6개월여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실망을 느꼈고, 절망에 빠졌으며, 분노했고, 그 분노를 승화시키는 열정을 보여줬고, 그리고 마침내 희망을 보았다.
지난해 10월 말 JTBC의 ‘패블릿 PC’ 보도로 세상에 민낯을 드러낸 ‘최순실 국정농단’은 권위만 앞세운 불통의 정권이 얼마나 실망스런 모습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국민 모두의 상처로 남은 세월호 참사 때, 아이들이 죽어가는 그 시간에 ‘올림머리’를 했다는 박 전 대통령의 행태는 국가와 정부를 불신의 나락으로 빠뜨리며 국민들을 절망하게 했고,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의 ‘기이한 커넥션’에서 속속 드러나는 어이없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이게 나라냐?’는 자조와 함께 국민들은 분노했다. 간간이 대국민담화나 사과가 있었지만 요식행위와 변명의 자리에 지나지 않았고 국민적 분노는 ‘광화문 촛불’로 타올랐다. 촛불집회는 지난해 9월 29일 처음으로 열린 이후 누적 인원 1600만명을 기록하며 세계 정치사에 유례없는 ‘민주 혁명’의 길을 보여줬다.
촛불민심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에 이끌었고, 헌재는 지난 3월 10일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그리고 사인(私人)으로 돌아가 불소추 특권의 방패막이 사라진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들로 이름 붙여진 일련의 사건 대부분은 오명으로 얼룩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국민 의식은 성숙했고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5월 9일 ‘장미 대선’을 치르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문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았고, 그동안 편가르기의 상징이었던 이념과 지역은 그 색이 많이 바랬다.
문 대통령은 인수위원회없이 곧바로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했다. 그만큼 행보가 빠르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를 지명했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주영훈 경호실장을 임명했다. 조국 교수를 청와대 민정수석에, 조현옥 교수를 ‘여성1호’ 인사수석에 내정했다. 정치권에선 다소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이다.
국민대통합 측면에서 호남 국무총리를, 청와대 비서실장과 각 수석들을 역동성있는 ‘젊은 피’로 기용했다는 점에서 일단 출발은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갈라져 있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대통합의 화두가 유효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워딩처럼 그것은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까지 감싸안는’ 행보여야 한다. 안보, 경제, 외교, 문화 등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그러나 산적한 현안을 급하게 서두를 일만은 아니다. 꼼꼼히 다시 살펴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무엇이 국익을 위한 것인지, 무엇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것인지 깊이 혜량해야 한다. 그리고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 많은 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내주는 그런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런 대통령의 길을 걷기 위해선 늘 초심을 잃지 않는 정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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