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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세이-대한민국 ‘토지제자의 날’
동양에세이-대한민국 ‘토지제자의 날’
  • 김기종
  • 승인 2017.05.15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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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종 <도예가>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대학원을 졸업한 이듬해인 1994년 3월 대전 우송대학교에 첫 강의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학창시절 학생회활동과 군에서의 장교복무로 한 달에도 몇 번씩 병사들 대상으로 정신교육을 해 오던 터라 첫 강의에 자신감을 갖고 의기양양 강의실로 들어섰다.

내 앞엔 처음 마주하는 40여명의 학생들이 바른 자세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의기양양하게 강단에 선 내가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고 떨고 있는 게 아닌가.
첫 강의를 위해서 작업장에서 흑판을 놓고 준비했던 지난 몇 날의 노력은 어디 간데없고 말은 더듬고 목소리가 작아지고 등줄기와 손바닥은 땀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모델링이란, 음~모델링이란? 모델링이란 말야 하~”
대낮에 하늘이 깜깜하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말 하는 거였다.
내 생애 첫 대학 첫 학기 첫 시간은 평생 잊을 수없는 시간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1교시를 마치고 강의실과 떨어진 3층까지 올라가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한없는 질타를 쏱아 부었다.
야! 이 바보같은 놈아 너 왜이래? 그동안 공부해서 준비한 거 있는데 왜 엉키고 난리여?
야! 김기종 너 정신 차려 잘 할 수 있지? 응? 파이팅!!
화장실 한켠에 쭈그려 앉아서 마치 미친놈처럼 한바탕 떠들어 대고나니 한결 나아졌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2교시는 그나마 부드럽고 여유롭게 진행을 할 수가 있었다. 대학 강의는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96년 6월 마지막 주 토요일. 이날은 내가 정한 최초의 대한민국 ‘제자의 날’ 이였다.
여주대학교 겸임교수로 있을 때 우리나라의 기념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별의 별날 다 있는데 유독 제자의 날 만 없었다.
그리하여 96년5월 다음 토지카페에 ‘매 해 6월 마지막 주 토요일을 대한민국 제자의 날로 선포하노라’ 하고 공식적으로 글을 올리고, 이 날 만큼은 모든 음식을 손수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제자들을 맞았다. 6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대학의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시기이기에 사제지간이 만나 여유롭게 하루를 즐길 수 있을 것이었다.

 드디어 첫 ‘제자의 날’. 청주인근을 비롯한 경기, 서울, 강원, 경주 등등에서 작업하는 동료 같은 제자들과 작업장 앞마당에 작업책상과 의자를 내오고 상에 종이 보를 깔고 나니 멋들어진 파티 장이 마련됐다. 그 위에 삼겹살을 굽고 뒷밭에서 상추니 오이, 고추를 따고 읍내에서 잡아온 토종닭으로 백숙을 하고 그렇게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은 오랜만에 밤새는 줄 모르고 왁자지껄 마냥 즐거웠다.
그 이후로도 ‘제자의 날’은 몇 년을 지속하며 이어져갔다. 사제간이 함께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계속적인 도자기관련 제품디자인 개발이사의 제안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2002년 학교에 사직서를 던지고 베트남 하노이로 향했다. 그래서 달달한 기억의 ‘맛있는 행사’인 제자의 날을 챙기지 못하였다.

물론 베트남 현지에서 시작한 대규모 외국인 회사로 직원 200여명의 관리도 그랬고 사업주의 자금조달도 순탄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상황도 좋지 않아 떠나기 전 꿈꾸었던 일들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외국 원정 생활 1년도 못 채우고 백기 들고 돌아온 내 자리는 엉망이 되어있었다. 이듬해 치러진 ‘제자의 날’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에서의 도자30년을 기리는 12회 개인전에서 만난 한 제자가 던지는 말 “선생님- 대한민국 제자의 날은 이제 없어진 건가요?”

아하! 내 사는 일이 바쁘다고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그래 올해부터 다시 부활시켜보겠네” 하고 즉석에서 약속을 했다.

올 해부터는 다시 6월 마지막 주 토요일저녁 토지 앞마당에서는 ‘제자의 날’이 다시 마련될 것이다.

몇 명이 참석해 줄지는 몰라도 내가 베풀 수 있는 만큼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추억을 준비하려 마음먹고 있다. 
 
94년 이후 김기종은 7개 대학 강단을 옮겨가며 근래에 찾아보기 드문 ‘23년 원로 강사’로 여전히 대학과 대학원에서 제자를 키우고 있으므로 ‘제자의 날’ 초청자를 맞는 기쁨 또한 계속될 것이리라.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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