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 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인간 세상의 근본 구성은 다양한 인격이다. 인격은 지식의 산물이다. 지식형성의 방법은 교육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가치화한다. 결국 가정교육에서 사회교육까지의 모든 과정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구체화하는 경로가 된다. 그 경로의 다양성이 사회구성원들의 인격을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인다. 그리고 그 색들의 조화가 한 사회의 성격을 결정한다. 이것이 인간의 서식지를 거대한 유기체로 만든 방법이다. 또한 생물은 본능적으로 진화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동물은 각자의 영역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루는 공동체에서도 같은 성격을 갖는다. 무릇 인간사회에서 그 구성요소 개개인과 전체의 진화욕구가 역사발전의 크기와 방향을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역사는 교육에의 접근방법의 변화와 그 경과 및 결과의 서술이다.
   어느 시대가 교육과 그 결과를 형식적 잣대로 판단하는 경우 이는 교육이란 이름을 가진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교육이 아닌 그 무엇을 양산한다. 그 시대에는 지식과 인격이 형식적 모습만으로서 만족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질이 형식보다 열위에 있는 경우 교육은 본질적 모습을 잃는다. 예를 들어보자. 갑은 1+2=3이라고 하는 반면 을은 그 답이 5라고 우기고 있다고 하자. 긴 싸움 뒤에 갑이 옳다는 것이 밝혀졌다면 누가 이긴 것인가? 형식적 측면에서 우리는 갑이 이겼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 측면은 반대의 결과를 용인한다. 갑은 이 논쟁 이전과 이후의 실력에 차이가 없다. 1+2=3이라는 것은 그가 원래 알고 있던 사실에 불과하다. 그런데 을은 다르다. 그동안 모르고 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형식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갑이 이겼다는 인식을 할 것이고, 실질주의자들은 을이 승리했다고 할 것이다. 갑을 승리자로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그 구성원들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형식에서 찾는다. 이 사회에서의 교육과정과 시행방법은 을의 발전을 고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반면 을을 승리자로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교육의 유기적 성질을 더욱 중요시한다.
  교육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떠받드는 공간물질이다. 그러나 형식적 결과를 교육의 본체로 보면 그 결과를 평가하는 방법 역시 형식적 객관주의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다수의 아이들이 수업과 유리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교사들의  교수행위를 학문형성의 질서로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현실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러한 교육의 모습이 가져다주는 시대의 비극이 다름 아닌 관계의 소멸이다. 한 개인의 장점은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발전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뉴턴이라도 구석기시대에 태어났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계산해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인의 발전이 사회의 진화과정상의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그건 허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형식주의 교육과정과 그 평가가 구태여 이러한 방식을 존중하는 이유는 남이 잘 해야 나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보다 못해야 내가 잘한 것이라는 평가철학 때문이다. 개인의 존재가치는 사회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을 견제의 대상으로 놓을수록 뚜렷해진다는 생각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가볍게 하고 사회구성원간의 관계를 소멸시킨다.
  사단(四端)에서 지(知)는 시비지심(是非之心)에서 나온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생각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가 갖는 생산성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남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에 지식의 최종적 목표가 있음을 강변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지식의 출발이라는 사실을 거부하게 한다. 교육개혁의 근본이 사회구성원들 간의 실질적인 관계설정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식적 평가주의는 교육을 받은 사람의 현장적응능력 등을 평가하는 일에서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자체가 목적인 교육현장 자체에서 이는 실질적 평가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형식적 진도설정과 그 평가만이 의미를 갖는 제도는 그 과정상의 실질성을 의미화 할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수업으로부터 유리된 대다수의 아이들 뿐 아니라 수업에 적응한 소수의 아이들까지도 사회적 관계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형식적 평가제도에 미련을 두는 것은 교육개혁의 의미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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