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섭 <영동교육지원청 교육장>

조동섭영동교육지원청 교육장

1979년 5월 교사로서 첫걸음을 제천 한수초등학교에서 시작했다. 근무하는 약 4년 동안 교직에 대한 애착을 갖고 열정적으로 근무하며 좋은 선생님들과 많은 제자들을 만났다. 초임 학교라서 오래 근무하고 싶었지만 충주댐 건설로 1983년 2월말 폐교되고 수몰되었다. 지금은 한송초·중학교에 자취가 조금 남아있을 뿐이어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고향인 충주에는 전입하기가 매우 어려워 제천 관내에서 학교를 옮기며 10여년을 지냈다. 끝내 충주 발령을 받지 못하고 1992년부터 청주 사직초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큰 도시의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육상선수 지도, 교육부 지정 연구학교 등 3년을 지낸 후 우연한 기회에 새로 부임하신 교감선생님의 권유로 도지정 육성종목인 수영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젊은 교사 시절 승진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 번 해 보고 싶은 강한 도전감에 사로잡혔다. 수영에 ‘수’도 모르던 내가 수영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열정적으로 지도교사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임준재 교감선생님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원은 큰 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 교직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수영부 담당을 맡으면서 충북수영연맹 임원들과 수시로 만나서 정보를 얻고 우수 코치를 지원받았으며, 재능 있는 선수 확보에 노력하였다. 더불어 그동안 하지 않았던 아침 운동을 도입하면서 선수들의 기록이 많이 향상되었다. 전년도까지 선수지도를 잘 해 주셨던 선생님과 새로운 코치의 노력으로, 1995년 부산에서 열린 아산기전국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 때의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우승기를 들고 청주에 도착해서 선수, 학부모, 학교선생님들이 다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금표를 주장으로 재영이, 문식이, 우만이, 광명이, 희준이, 재선이, 민수, 형수 등은 모두 우승의 주역들이었다.

지금은 후진 양성에 노력하며 충북 수영을 이끌어가고 있는 자랑스런 제자들이다.

그들이 사직초등학교 역사상 처음 종합우승으로 새로운 수영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 이를 통해 동문을 비롯한 학부모와 교육청 등 주변의 많은 관심과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는 사직초 수영부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사직초등학교에서의 4년 임기를 마치고 학교를 옮겨야 할 때, 수영부를 맡을 새로운 선생님을 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교육감님의 허락을 받아 1년을 유임하게 되었다. 사실 새 6학년 선수들의 기록이 꽤 좋은 편이어서 내심 전국소년체전 메달에 욕심도 있었다.

드디어 1996년 제25회 전국소년체전에서 사직초등학교 역사상 첫 금메달이 나왔다. 일반전국대회 메달과 달리 그 소중함과 가치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교육감님의 격려와 지원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명예도 크게 올라 수영하면 사직이라 불리게 되었다. 지도교사인 나도 덩달아 수영선수처럼 주가가 올라간 것 같았다. 그 덕분에 다음해도, 또 그 다음해에도 유임하며 수영부를 맡게 되었고 3년 연속 전국체육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였다. 더불어 도내수영대회와 일반전국대회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어, 충북수영연맹 이사로 선임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아울러 승진가산점도 많이 얻게 되었다.

나의 교직생활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그 때가 바탕이 되어 교직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충실하게 교직 생활을 이어나간 덕분에 훗날 교감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게 중임을 맡겨 주신 임준재 교감선생님! 정말 어렵고 자신 없는 일이었지만 용기를 주시고 선수들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신 분! 평범한 교사인 나를 수영계로 이끌어주시고 항상 든든한 뒷받침을 해주신 고마우신 분!
그 고마움 영원히 잊을 수 없어 늘 마음속에 담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장선생님으로 정년 퇴직하셨지만 마음은 어린이들 곁에, 늘 우리 곁에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이시길 삼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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