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마을회관 경로당 남자방에 경칠이가 찾아왔다. 방엔 80대 바깥노인장들 네댓 명이 앉아 있다. “아니 자네가 경칠이라구. 십여 년 전 자네 선친장례 때 보구 처음이니 이름 대지 않았으믄 몰라볼 번했네.” “저도 인제 내년이면 칠십이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래도 얼굴은 아직 의사하게 남아 있는 걸. 근데 웬 일여 오래간 만에 어려운 걸음 했으니?” “예. 어르신들 뵈러 왔지요. 그간 너무 제가 무심해서 면목 없습니다.” “여보게 경칠이 참 자네 안사람 요전에 타계했다고 내 자식한테 들었는데 그게 사실여?” “예, 실은 그래서 왔습니다.” “그래서라니?” “동찬이한테 필히 할 말이 있어 왔는데 집에 없어 만나볼 수가 없네요.” “요세 자네 또래 중늙은이들 인근 공장에 경비원으로 나가서 그렇다네. 집에 있는 날은 전날 밤을 새웠으니 낮엔 잘테구 집에 없는 날은 근무하러 가니 한동네 살어두 우리두 잘 못 보제. 근데 동찬이한테 할 말이 있다니 그게 뭔가 우리가 알면 안 되는 건가?” “천상 동찬이가 없으니 어르신들께 말씀 드려야겠네요. 어차피 동네 분들이 다 아셔야하는 거니까요.” “금메 그게 뭐냐구 뜸들이지 말구 어여 말해봐!” “그게요, 어르신들, 삼십여 년 전에 즈이가 이 고향동네를 뜬 사연을 다 아시지요?” “거야 다 알지 근데 그게 뜬금없이 시방 왜 나와 이제 다 까마득한 지난 일인 걸.” “그것 땜에 왔습니다.” ‘그것 땜에…?’

동찬이와 경칠이는 동네선 유일한 동갑내기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동창이고 결혼도 한 해에 했다. 동찬이가 봄에 했고 경칠이가 가을에 했다. 그런데 동찬이가 경칠이보다 한 달 먼저 났으나 동찬이 색시는 경칠이 색시보다 한 살 아래다. 하지만 섣달과 정월 간격이어서 따지고 보면 두루두루 돗긴갯긴이라 안팎들이 각각 서로 너나들이로 허물없이 지낸다. 그러니 새로운 음식을 해도 서로 나누어 먹고 논일밭일을 해도 서로 품앗이로 한다. 이러는 걸 보고 동네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한 배에서 한날한시에만 안 낳지 한배쌍둥이형제나 다름없어.” “그려, 저렇게 우애 있이 한 타령으로 지내는 집들도 드물게야.” “저러다 저거 나중엔 한집에서 살 거 아녀.” “그건 안 될껴. 동찬인 지들 두 내외만 있지만 경칠인 홀로된 아버지가 있어서 말이야.” “그야 무슨 상관여 가각 딴 방 쓰는데 안 그려?” “그야 그렇지만….”

이 말이 씨가 되었는지 동찬이 세 살 터울의 둘째를 낳은 이듬해 외딴 터에 새로 집을 지을 때 경칠이와 합작해서 그 옆에 나란히 같이 지었다. 둘이 의논해서 형태도 규모도 같았다. 그래서 두 집이 어떤 땐 헷갈려서 서로 집을 잘못 찾아들어 깔깔 허허 대며 웃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외따른 곳에 서로 이웃하고 가까우니 더욱 임의로운 사이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은 경칠이가 아버지와 이틀 작정으로 이모 생신축하차 출타한 날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늦은 밤에 동찬이가 읍내 장터에서 술에 잔뜩 취해 왔다. 비틀비틀 어떻게 집까진 찾아왔다. 그리곤 방에 들어가 마누라 옆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한데, “아이구 술 냄새, 술 냄새, 이 양반이 원제 왔댜.” 선잠에서 부스스 잠이 깬 사람은 경칠이 아내였다. 육중한 한쪽 다리가 배를 누르고 한쪽 팔이 가슴에 걸쳐있고 입에선 술 냄새를 푹푹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 불을 켰다. 그런데 앗!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게 웬 일인가. 남편이 아니고 동찬이가 아닌가! 놀란 나머지 부리나케 옆집의 동찬이 안 사람에게 달려가 데려가도록 했다. 그리곤 이 사실을 돌아온 경칠이에게 숨 거칠게 말하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잘해 주었더니 자기를 좋아해서 그러는 걸루 알았던 모양여. 당신이 집에 없는 걸 알구 작정하구 술 취한 척 어떻게 해볼라구 했던 게 빤해.” 그러면서, “한번 그러구 나니까 그 집하구 정나미가 떨어졌어. 그 음흉한 옆집남자 보기두 싫어.” 하며 가슴을 벌렁대는 거였다. 동찬이가, 너무 과음해서 인사불성이 돼 내 집인지 알고 잘못 들어간 것 같다며 아무리 간곡히 말해도 한번 오해로 뭉친 경칠이 내외의 마음은 돌릴 수 없었다.

그러더니 결국은 마을회관의 동네사람들에게 그날 사건의 전말을 일방적으로 말하고, 그래서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는 그들 두 내외의 마음을 정당화시키곤 누이가 사는 경기도 하남 땅으로 떠나간 것이다.

“제 안 사람이 가기 전에 누차 유언처럼 남긴 말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그때 그 일은 동찬 씨 말따나 술 취해 집을 잘못 찾아든 것 같다.’며, ‘내가 오해를 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으니 당신이 언젠가 한번 가서 동찬 씨께 사과를 하고 마음을 풀게 해 달라.’ 고요. 그래서 왔습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