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충북학 연구소장)

▲ 김규원(충북학 연구소장)

잘 아시다시피 폴란드의 작곡가 쇼팽은 조국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할 무렵 전쟁에 참전하기보다는 예술로 폴란드 음악을 알리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고로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동포들과 함께 싸우지 못한 미안함이 아픔이 결국은 자신의 심장을 조국에 묻어달라고 했다던가. 아무튼 우리가 예술가를 지원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듯한데, 꽃다운 열여덟 나이에 원치 않은 결혼을 올드한 귀족과 했지만 곧 이혼을 하고 이후 파리에서 낭만적인, 너무도 낭만적인 연애와 사교생활을 한 조르쥬 상드와 쇼팽과의 이른바 모성애적 연애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자연스럽게 파리와 바르샤바로 발길을 옮기기도 한다. 바르샤바에는 프레드릭 쇼팽공항이 있고  쇼팽 기념관도 있으며 시내 중심의 와지엔키 공원에는 근사한 쇼팽 동상과 공연장이 있는데 튜울립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4월 이든 아니든, 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쇼팽기념관은 꽤나 오래된 건물이고 건물 안에 들어가면 쇼팽 당시의 의상이나 사회풍경 등을 그린 그림, 의상 등과 함께 쇼팽의 작품을 헤드폰을 끼고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뻑적지근 요란하게 시설물을 설치하여 방문객의 기를 죽이는 곳이 아니라 인간 쇼팽,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를 생각하며 아울러 나의 자아 형성에 도움이 되는 예술적 역할이나 의미, 연애를 생각하게 하는 곳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바르샤뱌에는 왜 쇼팽마라톤이나 어느 시군처럼 몇백억원씩 세금이 투입된 쇼팽기념관, 쇼팽축제가 없을까. 시군단위로 만들어서 서로 연결이 안되는, 끊어진 길인 쇼팽 둘레길도 힐링, 힐링하면서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남해안의 어느 도시처럼 살아있는 대통령 생가를 복원을 한다면서 복원이 아닌 거대한 확장을 할 수도 있었을 듯 싶기도 하고.

아무튼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오랜 시간 잘 숙성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극적인 내용을 품고 있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고 기억을 하고 이후 유사한 사례가 나올 경우 그 이야기를 모델링하여 유사한 행동을 한다. 이른바 사회 심리학에서의 모델링 이론이다. 캐나다 북동부의 쓸쓸한 섬 프린스에드워드에는 맛있는 바다가재 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빨간 머리앤>의 작가 루시 몽고메리는 자신이 태어난 이 섬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고 이후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 섬에는 특별히 볼 것이 없어도 북대서양의 한적한 섬 특유의 쓸쓸함에 매료된 사람들이 방문하여 소설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후 기념관도 생기고 기념품도 판다고 하는데 이 모든 지역 마케팅의 출발은 스토리텔링 즉 잘 숙성된 이야기였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역시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드는 일본인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플란더스의 개>의 주 무대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후 시 정부에서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우정을 기리는 동상을 만들었다는 후문인데 아무튼 시작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특별한 이야기도 없는, 더욱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념관을 짓는, 하드웨어나 기술 중심적 발상이 우리 현실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념관 등등 시설물을 먼저 만들거나 아니면 생존해있는 작가의 경우 모셔다 놓으면 저절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일본 동북부의 니카다현 나가오카市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의 첫 장면에 묘사되었던 도시임에도 특별한 시설물이 없지만 게이샤의 슬프고도 따뜻한 눈망울 같은 눈발에 반사되는 듯 함을 느끼게 하는 도시로 기억된다.

아무튼 지역의 이야기를 맛있게 숙성시키기 위해서는 牛步虎視하는 것이 필요한데 급히 서두르고 규모를 억지로 키워서 될 일은 살아보니 그다지 많지 않더라는 경험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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