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우리는 두 전직 대통령의 ‘엇갈린 운명의 명암’을 보았다. 두 가지 ‘희비의 변곡점’은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417호 형사대법정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이뤄졌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곳에서 같은 날 벌어진 두 가지 양태의 ‘역사’를 보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갖는 막중한 의미가 어떠한 지, 그 직책에 부여된 역할을 퇴행적으로 거스를 때 얼마나 준열한 국민적 심판을 받게 되는 지를 똑똑히 목도했다. 주지하다시피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정식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21년 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섰던 곳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 세번째로 이 대법정 피고인석에 앉았다. ‘40년 지기’ 최순실도 함께였다. 박 전 대통령은 정면만 응시한 채, ‘곁을 두었던’ 40년지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 진행과정은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국민들을 실망시켜 ‘역시나’로 끝났다. 박 전 대통령은 18개 혐의 모두를 부인했다. 그의 변호를 맡고 있는 유영하 변호사는 “(검찰의 기소는) 추론과 상상에 기인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의 생각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국회의 탄핵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무엇일까. 현직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촛불집회에 참석한 연인원 1700만명의 국민적 함의(含意)는 무엇으로 해석돼야 할까. 이 모든 역사적이고 혁명적인 과정들은 ‘추론과 상상’에 의해 지어진 ‘사상누각’에 불과했던 것일까. 국민적 절망과 국민적 분노로부터 촉발된 국민적 판단을 이렇듯 폄훼할 수 있을까. 도무지 반성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에 대해 이원석 검사는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법정에 서는 모습은 불행한 역사의 한 장면일 수 있으나 대통령의 위법행위에 대해 사법절차에 따라 심판이 이뤄지는 법치주의의 확립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날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에는 현직으로는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에서 “(노무현 정부는)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말한 뒤 “노무현이란 이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의 상징이 되었고, 끝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꿈을 참여정부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로 확장해야 한다”며 “노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묻고 다 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역대 최다인 5만여명의 추모객이 모였다.
너무나 다른 풍경, 두 역사의 명암을 가르는 이날 풍경의 경계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통치의 지향점 차이다. ‘사적 이익’을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강변이 무색한 것은 그가 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에 있다. ‘피보다 진했던 40년 지기’ 최순실이 국정농단을 통해 끌어 모은 자금들의 최종 종착역이 어디일지는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운명’처럼 격랑의 역사를 헤쳐온 변호사 문재인을 19대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1982년 만난 ‘35년 지기’ 변호사 노무현과, 종국에는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아웃 사이더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이었다. 그 부채의식에서 문재인은 새롭게 태어났고, 친구 노무현의 명예를 다시 회복시켰다.
이런 ‘친구’로부터 비롯된 역사적 극명한 대비는 통치의 지향점이 국민이었느냐 아니었느냐에서 갈렸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다시 희원한다. 아름답게 퇴임하는 대통령 하나쯤은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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