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순 <동화작가>

그 날, 햇살은 참으로 눈부셨으며 바다는 한가롭게 출렁거렸다. 백사장을 달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갈매기 날갯짓처럼 가벼웠으며 마주잡은 우리의 손길은 참으로 따뜻했다.

여름휴가의 첫 날은 그렇게 시작했다.

아버지의 전화만 받지 않았다면 그 해 여름바다는 그렇게 한가롭고 따뜻하게 기억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전화는 하늘 가득 빨간 노을이 물들어갈 때쯤 걸려왔다.

“잘 지냈니? 요즘 네 소식이 없어서 걱정했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는 어떠세요?”

“내 걱정은 하지마라. 너만 잘 지내면 된다.”

짧은 통화였다. 하지만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 걱정은 하지마라.” 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내 가슴속에 돌덩어리처럼 내려앉으며 나를 바닥에 주저앉게 하였다.

아버지께 너무 죄송했다. 말기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께 애틋한 정을 느끼지 못했던 나였기에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고통을 먼발치에서만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 걱정을 하고 계셨다. 당신의 고통은 뒷전에 밀어두고 딸의 안부만 걱정하고 계셨다.

그날 나는 바닷가에서 참 오랫동안 울었다. 내 가슴속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들어있었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지금 생각하니, 아버지는 그날 나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던 것 같다. 아니, 아버지는 그전에도 나에게 여러 번 화해의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그 날 비로소 아버지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비로소 내 가슴속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서운한 마음들을 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해 가을에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막내딸하고 화해를 하셨기에 좀 더 편안하게 떠나셨을 것이다.

내가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속을 안다는 말이 있다.

요즘 스무 살이 넘은 내 아이들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부모에 대해 서운한 마음들을 참 많이 갖고 있다. 나와 남편은 그동안 무던히 애를 쓰며 자식들을 키워왔는데, 자식들에게는 부모가 살피지 못한 빈 구석들이 많았나보다.

이제라도 나는 아이들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다.

“미안하다. 그때는 엄마 아빠가 너무 바빴어. 그래서 네가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했던 거야.”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사과에 별로 감흥이 없는 눈치다. 아직도 자기 가슴속에 있는 서운한 기억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너는 아직 부모의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가 안 된 거야. 엄마도 그랬거든. 부디 너희들은 엄마처럼 너무 늦게 그 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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