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청주대 명예교수

역사적이나 환경적인 특징 등을 기준으로 구분된 일정한 기간을 ‘시대’라 말하고 그 시대의 사회나 인심 등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이나 사상 등을 ‘시대정신(時代精神)’이라 칭한다. 이러한 시대의 형태는 사회와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그에 맞게 변화하게 되고 시대정신도 그와 같은 흐름과 조화되는 것으로 전환된다. 세계는 공존과 공생, 평화와 공영, 공동체 의식과 공동선, 평등과 인권 등의 도모를, 각국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정신과 사상 등의 기조 하에 나라마다의 역사와 문화 및 환경에 따라 독자적인 시대정신을 지향하고 있다. 어느 나라는 자유와 정의 등을, 어느 나라는 개혁이나 혁신 등을, 또 어느 나라는 실용, 효용 및 소통, 통합, 창의, 형평 등을 시대정신으로 선택하고 있다.

한국은 한국대로 역사적, 환경적 여건 등에 맞는 지표를 설정하고 시대정신으로 삼아왔다. 산업화와 민주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 산업화가 일정 수준에 도달,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그 강도 및 넓이와 깊이를 더하게 되었고 경제 10대 강국으로 발전하면서 그 농도는 더욱 짙어졌다. 그런 선상에서 현재의 한국 특히 19대 민주정부는 ‘개혁과 통합’ 등을 시대정신으로 내걸었다. 많은 정신 중에 이 두 가지를 시대정신으로 채택하고 국민들의 묵시적인 동의와 동참을 구하고 있다. 국가나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낡은 것, 비합리적이거나 불합리적인 것, 정의가 아닌 것, 비정상적인 것, 법과 도덕 등에 어긋나는 것들을 과감히 버리거나, 배척하거나 개선하거나 정상화하는 등의 개혁과 국민간,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단체간, 노사간, 빈부간, 민관간 등에 존재하는 갈등과 대립 관계를 타파 내지 불식하고 상애(相愛) 및 선린(善隣) 관계로 전환하는 통합 등을 국가나 사회의 핵심가치로 삼자는 것이다. 국가가 건설되고(state building) 사회가 형성되고 나면 당연히 그 국가나 사회는 모든 업무를 옳고 바르며 공정하게 처리하여야 하는 것이고, 인간은 신분이나 소속 여하를 불문하고 법과 도덕 및 규범 등을 준수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마땅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개혁과 통합 등을 시대정신으로 삼은 것은 국가나 사회 등이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성찰과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제서라도 정상국가나 사회의 수준에 미흡하거나 부족한 것을 메꾸어 보려는 목적일 것이다. 당연히 이행하여야 할 사항들을 누락하거나 무책임하게 외면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건강성을 해침은 물론 이런 것들이 되풀이됨으로써 적폐 현상을 초래하는 것은 반민주적이고 반정부적이며 비정상적인 행위로 보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탈피하려는 것일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낭비적거나 불합리한 것 등을 가려내며, 편파적이거나 형평에 어긋나는 불공정성을 다스리는 개혁이나 지역간, 세대간, 정당간, 계층간, 노사간 등의 깊은 갈등이나 대립 등을 불식시키는 것이야말로 민본국가로서의 이념이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위상 등을 제대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개혁과 통합 등은 인간의 존엄성과 국가나 사회의 위상제고 등의 차원에서 당연히 추구되어야할 가치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국가나 사회의 존립근거를 튼튼하게 하는 좌표로서의 가치인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나 사회 등은 민본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개혁과 통합이 시대정신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민본(民本)의 철학과 이념 등을 알파와 오메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가나 사회의 소유권자는 국민이고 국민이 주인이라는 점에서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민(民)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시대정신은 진정으로 민의 것이 될 수 있으며 민이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국정이나 사회의 모든 운영체제가 정의와 공정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옳고(시:是) 그름(비:非)을 가려 옳은 것을 지지하는 정의와 시대와 공간 등을 초월하여 언제나 공명정대하게 운영되는 공정성 등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출렁이게 하여야 한다. 잠깐이나 일시적이 아닌 상시적이고 항상적인 것이어야 한다. 상수로서 자리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대정신은 생명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은 정상적인 국가나 사회라면 원래부터 그렇게 했어야 할 것인 것을 이제야 그것을 찾아 정상의 자리에 갖다 놓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깊이 뿌리내리게 하여야 한다. 정상의 자리를 확인하고 지키고 빛이 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나 사회가 변함없이 추구하여야 할 책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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