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수 <보은경찰서장>

2008년 서울에서 최초로 10곳에 지구대장이 경정급으로 발령이 났다. 그 전에는 지구대장이 경감급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지구대장으로서의 초동조치 대응력 등을 높이기 위해, 서울 지역에서 112신고건수가 많은 지구대를 중심으로 경정급으로 직급을 높여 발령을 냈던 것이다. 나는 서울의 남부지역에 위치한 금천경찰서 문성지구대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그 당시 직원만 85명으로 서울에서도 덩치가 큰 지구대에 속했다. 이미 서울지역에서는 4조2교대 근무체제가 정착되어 경감을 팀장으로 4개 팀이 운영되고 있었다. 지구대 소속 순찰차는 모두 5대로, 그 당시 신고는 하루에 50~60건 정도 되었다. 문성지구대는 관악구 신림8동, 금천구 독산본동, 독산3동, 독산4동 등 주로 서민들과 외국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그만큼 치안수요가 많았던 곳이다. 특히 야간에 치안수요가 많아, 금요일 야간의 경우에는 직원들이 계속 순찰차를 타고 가 신고사건에 대응하는 등 신고접수가 많아, 아침에 퇴근할 때는 입에서 단내가 나는 등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원래 행정구역과 경찰서 관할구역이 거의 일치하는데, 문성지구대는 특이하게 관악구 신림8동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이는 금천경찰서가 관악구 신림8동에 위치하고 있어 부득이 금천구를 관할하면서도 관악구 신림8동만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구대는 소규모 경찰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필자는 지구대장으로 있으면서 전반적인 경찰시스템을 많이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의 장이 되었다.

이 곳에서 지구대장을 하면서 겪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문성지구대는 서울의 큰 대로(大路) 중의 하나인 남부순환도로에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유독 야간에 술에 취해 택시비를 안 낸 사건(무임승차사건)이 많았다. 택시기사분들이 이런 취객들로부터 택시요금을 받고 하차시키기 위해 쉽사리 문성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그 횟수가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직원들은 반복되는 이 같은 일들에 우리가 택시비 받아주는 사람이냐고 푸념은 하면서도 취객을 깨우고 사건처리를 해주느라 진땀을 흘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야간에 갖가지 신고가 많아 신고사건 처리하기도 바쁜데 취객을 데리고 들어와 택시비를 청구하는 기사들을 봤을 때 직원들의 말 못할 애로사항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또 아침에 출근해 보면 직원들이 순찰차 안을 물로 청소하는 일이 많았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핏물이 여기저기 순찰차 의자 주변에 흘려있기가 예사였다. 관내에 외국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외국인 사이의 폭행·상해사건 등이 잦았다. 그래서 지구대에 근무자들에게는 따로 위험수당을 주는 이유가 있었던 것에 공감이 갔다.

이 지구대는 직원 숫자가 많다 보니 여러 가지 가정사로 고민을 토로해 왔다.

트라우마 문제, 배우자와의 갈등문제 등 경찰관들은 치안을 유지하고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막중한 사명이 있지만, 대부분 사건처리 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접하다 보니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불규칙한 퇴근 시간 등으로 가정에 있어서도 배우자와의 갈등, 자녀와의 갈등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지금도 경찰관들의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는 제도가 있지만, 경찰관들의 트라우마문제 등을 해결해주는 시설 및 제도가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 때 하게 됐다.

1년여의 짧은 지구대장 생활이었지만, 내 경찰생활에 있어 지구대에서의 생활은 어느 곳의 경찰생활보다도 보람되고, 경찰조직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야간 신고처리 등으로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직원들을 보면서 진정으로 존경스런 마음이 들었다.

날마다 취객들까지 달래가며 위험한 신고사건 등을 처리하는 지구대·파출소야말로 살아 숨쉬는,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일선 현장인 것이다. 지금도 신고사건 처리에 여념이 없는 지구대·파출소 직원들의 고된 일과를 돌이켜 보면서 경찰 동료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떠 올린다. 밤새며 땀 흘리는 일선경찰관들 모두의 건강과 건투를 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