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인식의 폭이 좁을수록 사람의 인식작용은 내부가 아닌 외부로 향한다. 사람의 인생은 오직 외부적 자극만을 인식하면서 그 막을 올린다. 자신의 내면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오랜 성장기간과 이 시기에 주어지는 실질적 교육과정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식작용이 내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하는 어떤 사실에 대한 판단은 객관적, 그리고 합리적 측면에서 종종 무리를 낳는다. 형식적 접근만이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물은 만들어 낼 수 없는 구조가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그 결과에 대해 실질적 가치의 도출을 방해한 사람이 자신의 인식구조의 방향성을 탓하는 경우는 없다. 인식작용의 방향이 밖을 향해 있으면 인식의 가치는 실질이 아닌 형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실질적 인식과 형식적 인식의 결과물을 달리한다. 이것이 교육이라는 개념에서는 더욱 냉철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서 교사가 학생을 가르친다는 행위가 형식적으로 개념화되면 첫째, 지식을 가진 교사가 지식이 없는 학생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을 수업이라고 정의하게 된다. 둘째,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몫이고 배우는 것은 학생들의 의무라는 인식이 형성된다. 셋째, 따라서 교사는 가르치는 행위로 평가가고 학생은 배우는 행위로 평가한다. 넷째, 그 평가는 당연히 형식적이어야 한다. 학생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교사는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과 조용히 대화를 시도하는 교사보다 더 열심히 가르친다고 인식되며 소설을 읽는 학생보다 문제집을 푸는 학생이 공부에 대한 열정에 대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은 교육의 대상이며 동시에 평가의 대상이란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청소년들의 생각과 행동을 교육과 평가라는 틀 속에서 비인격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 교육행위로 간주된다. 청소년들이 인생의 본질을 확장시킬 기회는 오히려 순간의 비판을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하는 솔직하지 못한 노력으로 대체된다. 담배를 피운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 아이가 어떤 정신적 고통을 경험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저 교무실에 붙들려 와서 담배를 피웠는가 하는 사실을 억압적 분위기에서 추궁당할 뿐이다. 이때 피웠다는 솔직한 고백은 오직 징계만을 가져온다. 안 피웠다고 둘러 대야 하고 안 피울 것이라고 형식적으로 서약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청소년이 담배를 피우면 징계하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표를 추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부끄럽게도 교육에 열정을 가진 어른들로부터 발원한 것이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현실은 담배를 피우게 된 동기에 대한 고민마저 흡연학생으로부터 빼앗아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제(前提)와 수단을 혼동하는 것이 오히려 일상이다. 자녀와의 대화의 모습은 대부분 ‘공부 열심히 해라,’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 등등의 인생 전제에 대한 이야기로 나타난다. 공부는 열심히 하라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친구랑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더 많이들은 아이가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교육이나 대화의 주요 요소가 되는 순간 모든 일은 실질을 잃는다. 부모가 스스로도 공부를 안 하고 공부에 대한 개념을 왜곡하고 있으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라는 말을 대화의 내용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그 것을 대화의 내용으로 들은 아이의 인식작용을 방해한다. 주변에서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지? 그런데 왜 엄마 말을 안 듣니?’라는 이야기를 대화의 내용으로 자주 듣는다. 공부하라는 말이 아이를 공부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저 인식작용의 방향왜곡이 가져온 오류에 불과하다.

휴대폰을 할 자유를 주면 아이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에 이를 사용함으로서 학업으로부터 멀어져간다는 믿음 역시 같은 문제이다. ‘수업시간에 휴대폰 하지 마라,’는 말은 첫째, 휴대폰은 수업과 관련 없는 곳에만 사용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둘째, 아이들은 자유가 주어지면 공부를 ‘안 한다,’라는 인식이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현재 공부하는 내용에 대해 아이와 함께 휴대폰을 이용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을 하기 전에 이미 전제된 인식을 사람들은 배반하려하지 않는다. 다만 비본질화에 따른 형식적 인식으로부터 오는 형식적 노력만을 고려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문제는 근본적 인식의 방향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이 교육개혁의 발목을 잡는 진정한 장애물이다. 끊임없이 인생의 가치를 내면화시킬 용기를 우리 어른들이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교육개혁의 주요 내용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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