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유교에서 이르는 ‘다섯 가지 복(五福)’이라는 게 있다.

곧 오래 사는 것(수·壽), 재산이 많은 것(부·富),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강녕·康寧),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것(유호덕·攸好德),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고종명·考終命)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재산이 많은 것(富)’은 많은 재산을 상속으로 물려받은 사람에게는 이미 한 가지 복은 누리고 있다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다섯 가지 복은 어디까지나 살아가면서 이루고자 하는 희망사항이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은 오래 살지 못 살지는 장담을 못하고, 재산을 많이 모을지 못 모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살아생전까지 건강할지도 편안할지도 알 수 없고, 살아가면서 도덕을 꾸준히 지켜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며, 명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죽을 때 편안하게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과나 평은 죽은 후에나 나오는 것 아닌가.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이미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도 살아 있는 동안 그 재산을 보전하지 못하고 탕진하기도 하니 이 역시도 살아서 오복을 누린다는 건 희망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일흔으로 들어선 절골댁은 이날 이때까지 이 다섯 가지 중 과연 몇 가지나 이루었는가를 짚어본다. 하지만 수(壽)한다 하면 그래도 지금은 80은 넘어야 어디다 내놓을 수 있으니 아직 안됐고, 빚지지 않고 남한테 궁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으나 부자(富)소리는 못 들으니 이것도 아직은 안 됐고, 삭신 쑤시는 건 둘째고 마흔이 가까운 딸애가 여태 미혼이니 맘이 편안(康寧)하지도 않으며, 도덕을 지키기는커녕 엄마 쌀독에서 쌀을 몰래 퍼내 썼으면서도 안 그랬다고 딱 잡아떼곤 했으니 유호덕(攸好德) 역시 못 지켰는가 하면,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考終命) 역시 자신을 못하니 하나도 이루어진 것도 없고 이루어지지도 않았음을 절감한다. 그런데도 지난날 이것들이 이루어지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러는 걸 알아차린 엄마는 다 큰 다섯째 딸을 앞에 놓고 일렀다.

“너 ‘오복조르듯’이 무슨 말인지 알어?” “몰라, 그게 무슨 말인데?” “내가 늘 오복 갖추기를 노래삼아 바라니까 네 아버지에겐, 내가 오복을 받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심하게 조르는 모양으로 보였던지 ‘오복조르듯’ 한다면서 그 말뜻은 ‘심하게 조르는 모양’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옛날부터 나처럼 오복을 바라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지 그런 말이 나온 걸 보믄.

너도 지금 ‘오복조르듯’이 오복이 이루어지길 간곡히 바라고 있고. 근데 말이다 네가 바라는 것 그것 그거 조른다고 이뤄지는 것 아닌 것 같다. 내가 시방까지 살면서 보면 그렇다. 누구든지 바라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조른다고 다 이루어지면 다 잘 살고 행복한 사람들로 우글거릴 터이지만 지금 세상이 어디 그러냐. 그러니 이 에미 말 새겨들어라.”

엄마는 딸만 여섯을 두었고 아버지는 이 다섯째 딸이 아홉 살 때 돌아가셨다. 엄마는 이 여섯 딸들을 다 시집보냈는데 이 다섯째 딸이 딸만 하나 낳고는 마흔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계신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이런 딸을 보고 엄마는, “딸들이 여럿이면 그중 하나는 엄마 닮는다는데 네가 꼭 그렇구나!” 하고 한숨을 몰아쉬었다. 엄마 말대로 이 딸은 엄마 닮아 억척으로 엄마 농사일 도우며 살아가면서 동네 허드렛일이며 읍내식당일, 행상 등 돈 버는 일이면 다하고 더러는 엄마의 쌀독에서 몰래 쌀을 퍼내 딸의 교육비로 충당하기도 했다.

그렇기는 해도 남에게 손해보이는 일, 해코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 앞으로 농토며 집도 장만했다. 하여 이제 나이 일흔 앞에서 한숨을 돌리며 지난날 오복을 갈망하던 때를 돌이키면서 짚어본 것인데 하나도 해당이 되지 않으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엄마 말이 옳았다. 그 옛날 이 다섯째 딸이 다 컸을 때 오복받기를 바라는 눈치를 채고, 오복은 오복조르듯 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에미 말 새겨들으라고 한 말. 그 말은 그냥 지나쳐버리고 뒤늦게 이제야 새겨본다.

복이라는 것 그것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것 그걸 복이라고 여기면 된다. 먹고 살아갈 땅도 있고 자고 일어날 집도 있지 않은가 하고. 그러는데 딸애 말이 불쑥 끼어든다. “엄마, 나 시집 안 간다고 걱정하지 말어. 요새 마흔이 가까워도 넘어도 시집 안 가는 여자들 많어. 아니 아주 시집 안 가고 혼자 사는 사람들두 수두룩해. 나같이 돈 많이 버는데 왜 간섭쟁이 사내하구 말썽쟁이 애 낳구 꼭 집안에 매어 사냐 이거야. 그래두 나는 늙어 죽을 때까지 엄마하구 둘이 같이 살 거야. 알았지 엄마!”

이건 또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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