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자(수필가)

 

(동양일보) 고향마을 입구에 시내버스 승강장이 있다.

그 승강장에 설치 된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 속 그가 갑자기 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는 옛날과 변함없이 웅장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정이품송'이라는 벼슬을 지닌 나무다. 이 나무는 보은의 상징이기도하다. 내 고향이 보은이라서 그런지 지금도 그를 무척 사랑한다. 마치 나를 반겨주는 고향같은 그리움이 서려있다.
조선 제7대 세조 임금님이 지독한 피부병에 걸려 백방으로 손을 썼으나 백약이 무효였다고 한다.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의 명산명수를 찾아다니던 중 속리산 복천 암자를 찾아가게 되었다. 마침 소나무 옆을 지날 때 임금님이 탄 가마가 나무 가지에 걸릴까 염려되어 "연(輦)걸린다"고 말하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어가(御駕)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임금님이 일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갈 때는 이곳에 이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세조 일행은 이 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마치 나무 모양이 우산을 펼쳐놓은 듯도 하고 버섯모양처럼 생겼다.

이런 기적을 행한 소나무가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게 여긴 임금님은 정이품(正二品)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의 직위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이라는 벼슬을 얻게 되었고 또“연 걸이 소나무”라는 명칭까지 얻게 된 나무다.

나무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이럴 진데 우리는 어떤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심을 갖고 소통하지 못하고 극도의 이기심이 팽배한 불통의 시대가 되었다. 이런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나무의 지혜로움이 사람보다 더 크다는 생각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세조 임금의 어사를 받은 정이품송을 보면 누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의 모습은 빼어나게 잘 생기고 위풍당당하여 보는 이 마다 반할 수밖에 없다. 속리산에 갈 때마다 멋스런 소나무 옆에 서서 폼을 잡고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 팔로 힘껏 끌어안아보기도 하고 양팔을 벌려 재보면 가슴이 뿌듯했다.

내 풋풋한 청소년기인 1962년 12월 3일에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 되어 더욱 애착이 갔다.
오랜 세월을 두고 푸른 옷을 입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그를 가슴 속에 사모하는 마음을 간직했다. 그랬던 그가 온갖 풍파에 꺾인 아픔과 찢겨진 상처가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기력이 쇠약해져 볼품없이 되었다. 지난 날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당당하게 서 있던 자취는 간 곳 없어 이제는 안타깝고 서운함만이 가슴을 친다.
몇 해 전 광릉수목원에 갔을 때 세조 능 근처에 정이품송 아들나무 두 그루가 잘 자라고 있음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 각처에 가꾸고 있는 어린 나무들이  튼튼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아무쪼록 이 후계 목이 자손만대까지 이어지리라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충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지난 2002년 정부인송(천연기념물 352호·보은 서원리)에 인공 수분시켜 1년 뒤 받은 씨앗을 심어 정성으로 키워온 정이품송의 자손나무다.
어찌 말 못하는 나무가 임금님의 행차를 도울 줄 알았을까. 또한 나무에게도 벼슬을 내릴 수 있었던 세조 임금님의 지혜로움에 놀랐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런 마음으로 정성과 사랑을 담아 아끼고 보존하는 정신이 있으니 기쁘다. 이 아름다운 정이품송의 이야기가 전해져 후세에 그 이름이 영원히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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