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흔히 ‘J노믹스’라 불리는 새 정부의 일자리 로드맵이 공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일자리로 시작해 일자리로 완성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에서도 이에 보조를 맞춰 100일 이내에 모든 국정시스템과 정책 수단을 일자리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창업 활성화, 재원 마련을 위한 세제개편, 사회적 합의 등 주요 방안들이 총 망라돼 있다.
정규직 전환 로드맵은 실태조사를 거쳐 일단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사실 올해는 공직사회에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원년이기도 하다. 내년에 만 60세가 되는 1958년생들이 올해 공로연수나 명예퇴직으로 모두 은퇴한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으로 물러나는 전국의 광역·기초 자치단체를 포함한 지방공무원은 올해 7341명으로 추정된다. 충북도만 해도 올 공로연수나 명예퇴직하는 '58년생'은 65명에 달한다. 전년도와 지난해 물러난 1956년생과 1957년생이 각각 40명과 45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고 62% 증가한 것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해서인지 공공부문 일자리에서 81만개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목표이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주요 지표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도 과도하게 비정규직을 쓰는 대기업에 부담금을 물리고 정규직 전환 실적이 좋은 곳엔 세제지원을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대기업이 비정규직을 쓰지 않아도 될 만한 여력이 충분한데 비정규직을 쓰기 때문에 이런 부담금 제도를 적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유럽 선진국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갈수록 외국은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라도 정규직 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있다. 기업에게는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고 국가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대신 비정규직 양산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런 면에서 정부가 민간 부문의 정규직 전환을 급하게 추진할 경우 인건비에 대한 부담은 여력이 있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게 더 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직업 안정성 보장을 위해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간영역까지 너무 급하게 추진할 경우 중소기업에게 큰 부담을 떠안겨 중소벤처기업부 승격을 통한 중소기업 양산정책이란 또 다른 공약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실제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지난달 하순 경총포럼에서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힘들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양산으로 사회양극화를 불러온 주요 당사자로서의 자기성찰을 주문하며 정재계간 경색된 분위기가 조성됐다. 새 정부의 일자리위원회가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공공부문 중심으로 만드는 것은 중소기업계의 불만을 수용한 것일 수 있다. 현재 비정규직의 범위를 놓고도 노사 간 시각차가 크다. 재계는 비정규직 비율이 32.8%(644만명)라고 하지만 노동계는 53.4%(1145만명)라며 맞서고 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업계 사정을 도외시한 일자리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사·정 합의를 거치기로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 로드맵을 추진하자면 정치권의 입법 과정도 거쳐야 할 것이다. 정책의 기본방향은 유지하되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업계 의견을 폭넓게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 급히 가려고 하면 넘어질 위험도 커지는 법이다.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결과적으로 더 빨리 가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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