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예년보다 여름이 일찍 찾아왔다. 계절이 바뀌어 입으려고 옷장에서 꺼내 놓았던 얇은 긴소매 옷을 다시 제자리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한번 입을 수 있게 되었다. 휴일 오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집안 일로 먼 길을 나서는 중이었다. 도로사정이 점점 나아져 오가는 시간이 단축되고 피로를 경감시켜주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복잡한 도심을 빠져 나왔다.

낮은 산 중턱에 전에 없던 주택들이 눈에 보였다. 길에서 가까운 곳에 너른 잔디를 잘 가꾸고 여러 초목과 꽃들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집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저런 집 정원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꿈을 꾸다가 이내 게으른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매장 대신 화장이 대세가 된 장례문화의 변화로 묘지로 허물어지던 야산에는 어느새 전원주택단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계획적으로 자연 경관이 훼손되고 녹지를 잃어가고 있다.

인구감소를 넘어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도 주변에는 농토와 산지가 허물어진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그곳에는 새로운 초, 중등학교가 신설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학교는 입학할 학생이 없어 폐교가 되는데 말이다. 충북의 주택보급율은 이미 100%를 넘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더 많은 신축부지가 도시계획 중에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모르겠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산업단지와 그 인근에는 주거지가 조성되고 있다. 출산율은 중가하지 않고 외지에서 유입되는 정주인구도 크게 늘지 않음을 감안하면, 신축 아파트가 생길 때마다 일정한 인구 내에서 동네만 바꾸어 이사하는 셈이니 미분양 아파트 증가와 노후 아파트의 가격하락은 주먹구구식으로도 쉽게 계산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새롭게 분양되는 아파트들 내부 마감재와 인테리어의 고급화를 내세워 분양가를 높여 놓으니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이론으로는 집값을 이해하기 어렵다. 장사진을 이룬 겹줄을 서서 반나절이상 기다린 후 청약신청을 하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것을 큰 행운으로 알고 기뻐했는데, 십 여 년이 지난 지금의 집값은 당시의 분양가를 밑돌 뿐 아니라 꼭 팔아야 하는데 매매가 되지 않아 시름이 깊은 이웃도 있다.

대학에 입학하려고 재수를 하는 학생들이 많아져 대학의 신설과 입학정원을 증원한 대책의 결과로 출산율이 감소한 현재는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과들이 속출하여 일부 대학은 취업률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개교 시 생긴 학과까지 통폐합과 폐과 조치 등으로 몸살을 앓는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이 몇 십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도시의 정비와 개발도 좀 더 장기적이고 예측적인 전략을 가지고 대비해야 함은 당연하다. 단기적 안목과 사익을 앞세우는 사람들과 어떻게 조율하고 환경의 보존과 개발의 필요에 균형을 맞출지 다 같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결혼을 앞둔 청년에게 주택문제는 큰 걸림돌이다.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농촌에서는 가축의 전염병과 거듭되는 가뭄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소리에 무심했는데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낸 모습을 보면서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비를 구경한지 꽤 오래되었다. 이 모두가 자연환경을 지키지 못해 기후가 변화된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인 대응과 실천이 부족한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인의 물과 에너지 절약생활도 필요하겠지만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인구감소, 환경보존, 주택공급, 지역경제를 장기적 발전계획 하에 종합적이고 다각적으로 면밀하게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이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금방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기도 어렵다. 아주 짧은 시간에 경제적 성장과 변화를 이룩한 우리의 저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살펴보아야 한다. 산업의 논리에 급급해 수려한 금수강산을 헤치거나 인공적으로 급조한 관광지나 대형 건조물이 효율성을 발하지 못하고 유지비로 세금만 낭비하는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도 단기간에 성과를 보려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합리적인 해결 대안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참고 기다려 주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선거에 의해 결정된 직위를 가진 분들도 자신의 임기 내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훌륭한 정책과 사업들은 당파를 떠나 이어가면서 후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아주시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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