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동양일보) 민주주의는 혼란을 수반한다. 그런 탓에 민주주의를 택한 사회는 연일 시끄럽다. 다양성과 이해의 대립 속에 분출되는 요구는 필히 혼돈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허나 민주주의는 혼란 속에서 합의에 도달하는 조율의 과정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혼란은 늘 함께 간다. 권력이 시민에게 있는 민주주의는 내 편끼리 의기투합해서 갈 수 있는 만만한 체제가 아니다. 적어도 권력에 불편함을 문제제기하는 이들의 요구를 끌어안는 기본기에 충실해야 민주주의다. 오래 억눌려온 목소리라면 요구도 절실하기에 혼돈의 크기도 크다. 각 계 각 층의 요구가 혐오스러운 사회혼란으로 오인된다면 그건 획일적 사회일 뿐이며 소름 돋는 전체국가다.

군인이 정치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간혹 마주한다. 그 시절의 질서와 어설픈 사회정화의 당위성에 보이지 않은 합법적 폭력이 있었음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합법화된 국가의 폭력이 어떻게 시민을 망가트리는지 30년 전 우린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에서 처연하게 목도하였다. 강제된 이념과 질서는 합법적 폭력의 이름으로 대게 야만적이며 자발성과 절차성이 전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탐구한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교육현장에서의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탐구한 글이다. 학교 내 문제아 기표는 질서를 벗어나는 혼란의 주범이며 질서 밖 정화의 대상이다. 문제아 기표를 일사분란하게 학교 내 질서에 복속시키기 위한 담임과 반장의 가공된 포용은 전체주의적 폭력으로 그려진다. 전체주의적 폭력은 어떤 경우이든 본래의 정체를 숨기고 제법 그럴싸한 ‘사랑’으로 미화된다. 담임선생과 반장의 합법적이고 계획적인 그림자 폭력에 두려움을 느낀 기표는 결국 학교를 떠난다. 그리고 절규 한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포용의 형상이기에 선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획일화를 내재한 합법적 폭력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가 그랬듯 물리적인 폭력은 합법적인 폭력의 희생약이 된다. 합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도 야만의 범주 안에 있다. 물리적 폭력과 미개하긴 마찬가지다. 사적이익을 취하는 무기로도 종종 쓰임 된다. 막스 베버는 “민주주의와 병행했던 행정체제는 시민적 자유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억제하는 기제로서 기능을 갖게 될 때 양자 간의 모순은 필연적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의 예를 상정해 봐도 베버의 지적은 탁월하다. 학교폭력에 대해 교육당국이 해결책으로 내놓은 ‘가해자 엄정처벌’은 사실 아무런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가해자인 학생에게선 ‘우상의 눈물’의 기표처럼 용서받을 기회를 박탈하고 제도 밖 아이들로 규정될 것이다. 나아가 피해자인 학생에게서는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무너진 인격적 상처를 회복해나갈 과정을 앗아간다. 미성숙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상처와 낙인을 치유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것이 합법의 이름으로 가공된 획일적 질서의 비극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이고,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낮다. 인문의 절대적 빈곤국이다. 인문학은 사람 사는 세상의 토대이다. 인문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협력이 필요하고, 다양성이 존중되어져야 한다. 강제된 질서를 위한 획일주의는 서늘하게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부인하고 인간을 이념이나 집단으로 파악하고 차별하는 획일주의는 인간 행위의 목적을 개인이 아닌 집단의 승리로 보고 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감내할 희생은 납득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자유이며 민주주의다.

국가에서 시장으로 권력이 이동해온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늘 착한 시장을 염원하지만 그런 시장은 단언컨대 없다. 그러하기에 획일적 질서로 강제된 시장의 질서도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 질서를 만들어 가는 일이 이 땅의 교육위기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우리의 과제다. 고용시장에서도 획일적 질서는 반드시 비극을 초래한다. 그래서 부실한 획일적 정규직화보다 동일노동에 대한 차별해소가 먼저다. 그것이 시장의 합리적 질서를 견인하는 제대로 된 고용정책일 것이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은 필수다. 온당한 시장자유의 질서를 위해 이 것 만큼은 사회적 합의를 모아 내보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