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은정 시인

시커멓고 키가 큰 저녁이 성큼성큼 열지 않은 창을 넘어 방안으로 획 들어왔다.
주인은 알 바가 아니었지만 아이를 잃어버린 목소리들이 자꾸만 저녁을 불러들이는지
곧 문들이 열리고 닫히고, 불이 켜지고, 침묵이 어둠보다 도란도란 키득거렸다.

지 애비를 부르며 자란 아이가 지 애를 데리고 모처럼 시간을 내어 놀아주는 숨결이 어느새 유리창 성에로 끼어
아이는 자꾸만 앞에 있는 애비를 지 생각대로 얹어 부르고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애비를 또 애타게 부르고, 아이가 돌아나간 골목으로 애비로 돌아 나와 가만히 피자마 바람으로 대문간에 앉아 담배를 빼 문다.

△ 시집 ‘바람의 결에 바람으로 서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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