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시인

늦도록 숨은 길목 짚어가던 발길이 닿은 곳은
문턱 높은 그대 가슴팍이네
어스름 속 파고들자
목덜미 서늘한 가을밤은 누워서 더 고요해지며
낮은 숨결까지도 밀봉해버리네
토해내지 못한 몇 마디 구절, 은밀한 가락으로 남아
수줍은 해당화 꿈 화진花津 화진花津 새겨놓았는지
몸 속 어딘가에 때늦은 꽃술이 피어나 밤새 궁금하였고
바람 뒤척이는 머리맡엔 짙푸른 동해가 넘실거리네
돋을새김 물꽃 피우며 여념 없이 물 위를 건너뛰다
기꺼이 추락하는 물수제비 뜰 때의 돌처럼
굽이치며 밀려올 것 같은 내 사랑이 내딛는 걸음
기어이 벼랑이어도 좋겠네
길빛의 억새 넉넉히 허공에 쓰다듬는 가을 화진포

△ 시집 ‘손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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