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숙 <금융경제연구원 원장>

햇빛이 빌딩 창문에 찬란하게 부서져 내리는 4월의 어느 날, 나는 택시를 타고 뉴욕 맨하탄 이스트 세컨드 에비뉴를 따라 미드타운을 지나고 있었다.

빽빽한 차량과 군중의 흐름을 의미 없이 응시하면서, 다음 비즈니스 미팅의 성공을 위해 생각을 집중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동안, 택시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고 사람들이 와르르 횡단보도로 쏟아졌다. 보행자 행렬의 뒷부분에, 80이 훨씬 지났을 것 같은 백발의 노부부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란 토끼 같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 노부부를 바라보았다.

아! 놀랍게도 두 분은 두 손을 꼬옥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평온한 모습으로 길을 건너고 있지 않은가! 저렇게 머리가 하얀 백발이 되었어도, 두 손을 꼬옥 잡고 거리를 거닐 수 있는 부부의 사랑과 신뢰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도 저분들같이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어도 서로를 애틋하게 아끼고 하나가 되어 두 손 잡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순수함과 사랑으로 살 수 있을까? 순간 내 가슴은 신선한 감동의 충격이 일어나고, 아련하게 저려오는 연민과 사랑이 넘쳐옴을 느꼈다.

그 날 이후로, 군중 속에서 두 손을 꼬옥 잡고 걸어가던 이 노부부의 모습은 내게는 피곤하고 힘든 생의 마지막 가야 할 오아시스 같은 안식처로서 나의 가슴속에 잊지 못할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5월 22일 ‘세계부부의 날’을 맞아 뜻하지도 않게 우리부부는 “올해의 부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세계 부부 의 날 및 국가기념일 제정 기념으로 ‘2017년 세계 부부의 날 국회기념식’에서 수상되었다. 상을 받기 전까지는 세계부부의 날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뭔가 겸연쩍기도 하고 쑥스러운 마음을 안고 수상을 하기 위해 국회도서관으로 갔다. 부부상을 수상하면서 나는 두 손을 꼬옥 잡고 걷던 맨하탄 거리의 노부부를 생각했다.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을 떠나 객지에서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의 사랑은 다 같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우리 부모님의 자식사랑은 정말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과 봉사, 배려였다. 특히 우리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헌신적이어서, 객지 생활 하는 동안 나는 항상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향수를 가득 안고 살아왔다. 고교시절 친구 집을 방문 했을 때 내게 가장 부러웠던 모습은 대문을 열어주시며 반기는 친구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전형적인 보통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게 생각되었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항상 가족과 헤어져서 사는 운명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꼭 이루어야 할 꿈, 내가 가고 싶은 길, 마지막 가야 할 길은 바로 ‘두 손을 꼬옥 잡고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맨하탄의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 이었다.

60년 걸어온 길을 뒤 돌아 보면, 많은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연민을 가득 보게 된다. 때로는 욕심과 집념에서 나의 이상과 꿈이 아닌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우를 범한다. 이제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으리, 그래서 더욱 성실히 열심히 정성을 다해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야지 하고 다잡지만, 시간과 함께 또 다른 후회를 항상 뿌리면서 살아간다.

올해의 부부상을 받고,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소박한 꿈을 되새기며, 남편과 평생 친구로서, 동반자로서 항상 의지하며 두 손잡고 걸어가는 “맨하탄의 노부부”가 되리라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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