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58년 개띠. 우리 사회 베이비부머 세대의 상징인 이들이 공직사회에서 물러난다. 정년퇴직 1년을 남겨두고 공로연수에 들어가 사실상 공직을 떠나는 이들은 만 60세가 되는 내년에는 ‘법적으로’ 은퇴한다.
충북도청만 해도 올해 공로연수에 들어가거나 명예퇴직하는 58년 개띠들이 65명에 이른다. 전국적으론 7341명이나 된다. 이들이 이렇게 많은 데는 1958년 출생인구가 90만명을 넘어선 폭발적 증가 때문이다.
공직사회에 동년배가 많은 만큼 특별한 일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충북도청 토목직의 경우 4급 승진이 어려운 5급 동료를 위해 4급 승진 6개월만에 자진해서 자리에서 물러나는 미덕을 보여주기도 했다. 항간에선 ‘자리 돌려 먹기냐’는 눈총도 있었지만 같이 공직에 입문해 같이 고생해 온 동료이자 친구 간에 의리를 보여줬다는데 더 의미가 컸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선배 공무원들이 그래왔듯이 그저 ‘때가 되니 퇴직한다’는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다. 어찌보면 무더기로 퇴장하는 무리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58년 개띠들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그 와중에 특별한 퇴임 의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다행 중 다행이었다. 그 특별한 의식을 보면서 공직사회에 저런 공무원도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런 특별한 퇴임 의식이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도 확산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김선호 충북 증평군부군수가 주인공이다. 그 야말로 58년 개띠로 이달 말 공로연수에 들어가 1년 후인 내년 6월30일 정년퇴직한다.
그의 이름이 특별히 거론되는 데는 그가 공로연수에 들어가기 전 특별한 자축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대개의 정년퇴임식은 친지나 가족, 동료들 축하속에서 의례적으로 조촐하게 치러지거나, 아예 퇴임식도 없이 조용히 떠나는 게 관행처럼 돼 왔다. 특히 공로연수에 들어간 후 1년 뒤 정년퇴직하는 공무원은 주변을 의식해 아예 퇴임식도 갖지 않고 쓸쓸히 공직을 마감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김 부군수는 판소리와 자작 시 낭송이 어우러진 한마당 잔치를 펼쳐 퇴임 자축 의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58년 개띠 한 공무원이 이 공연을 보고 “나는 뭐 했지”하고 자괴했다니 이 의식이 주는 교훈은 참으로 값져 보였다.    
지난 16일 증평군립도서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김선호 공직퇴임 기념 판소리 한마당·출판인사회’. 300여석의 자리는 꽉 찼다. 도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옛 동료와 58년 개띠 공무원들, 증평지역 지인들이었다. 멀리 전남 완도와 영광에서 온 김 부군수의 사무관 교육 동기들은 특별 손님이었다. 김 부군수가 사무관 교육에서 1등을 했다는 ‘비밀’도 그들의 입을 통해 공개됐다.
시조집 ‘섬마섬마’ 출판기념회를 겸한 이 특별공연은 김 부군수가 기획, 연출, 사회, 출연을 모두 맡았다. 그는 35년 공직생활의 마지막 여정인사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책을 내고 판소리와 함께 의미있게 마감하자는 생각에 마련했다고 한다. 수익금은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장학기금에 보탤 것이라고도 했다. 32년간 내조한 아내를 향해선 직장에서 늦게 온 남편 대신 스스로 수술동의서를 쓰고 맹장수술을 받을 만큼 평생 소중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하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김 부군수가 20여분간 박타령 등 흥보가를 구성지게 부르자 객석에선 추임새로 흥을 돋궜다. 일단은 청중 앞에서 아무나 할 수 없는 판소리를 불렀다는 자체가 합격점이다. 그의 작품 ‘퇴행성’과 ‘애주궤변’ 시낭송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중요무형문화재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인 증평 출신 황수연씨와의 사랑가를 끝으로 1시간20여분간 진행된 그의 ‘쇼’는 막을 내렸다.
공직을 마무리하면서 이러한 행사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 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수많은 작품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그다. 그럼에도 판소리를 너무 잘 부르면 일은 언제하고 판소리만 했느냐는 구설에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일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다는 것은 주위에서 다 인정한다. 청주 서문시장 삼겹살 거리도 그가 청주시에 1년 교환 근무할 때 기획한 것이다.
아무튼 우리 주변에 제2, 3의 김선호가 많았으면 좋겠다. 꼭 공무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직할 때 그처럼 감춰 둔 끼 하나쯤은 자랑할 정도가 돼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맛 아닐까, 김선호가 답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