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북한에 억류됐다 의식불명 상태로 미국으로 송환된 웜비어가 송환 엿새만인 지난 19일 사망하면서 한국과 북한, 미국의 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웜비어는 2015년 말 중국 관광회사가 주최한 ‘북한 새해맞이’ 행사에 참여했다가 체제 선전물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17개월 동안 억류됐었다.
직접적인 사인이 무엇이건 그에 상관없이 웜비어의 사망은 북한의 책임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김정은 정권은 ‘인질외교’를 통해 적지않은 ‘재미’를 봐왔다.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미국의 정책적 가치판단을 잘 알기에 그것은 북한의 정권에 효과적이기도 했다.  카터의 방북 등은 그런 성과 중 하나라 할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거기에 내재된 위험성 만큼이나 막다른 곳에 몰리고 있었다. 웜비어의 사망이 바로 그 도화선이다.
건강했던 미국 청년이 김정은 정권에 의해 살해 당했다는 미국 내 여론이 고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의회와 주요 언론들까지 대북 강경대응 기조로 바뀌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 정권의 야만성을 규탄한다”고 했고,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북한은 불법구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 의회에서도 “북 정권의 ‘살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이런 강경 기조는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려 시도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게는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웜지어가 사망에 이르게 된 아주 중대한 책임이 북한 당국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며 “북한의 잔혹한 처사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해왔던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문 대통령의 워딩은 웜비어 사망에 대한 북한의 책임론은 강조하되, 오는 29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대북 회담에 걸림돌이 돼선 곤란하다는 인식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극도로 악화된 미국 내 대북여론이다. ‘보복 차원의 조치’가 준비될 것이라는 예견도 나온다. 북한 핵과 미사일 포기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들이 강도 높게 진행되거나 그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관측이다.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 웜비어 사망이 북한 당국의 가혹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추론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에는 걷잡을 수 없는 관계 악화로 빠져들게 된다.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이 경우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런 저런 돌발 상황으로 우리 정부가 취할 스탠스에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눈앞에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도 매우 중요해졌다. 뾰족한 해법이 없는 게 더 큰 걱정이다.
그럴수록 한 발 물러나 ‘큰 틀’에서 봐야 한다. 비이성적 북한 정권에 물어야 할 책임은 준열하게 물어야 한다. 그렇지만 북한과의 대화와 회담을 원천적으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투트랙 전략으로 가자는 이야기다. 이는 북한 정권 보다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 민족과 우리 백성의 삶을 위해, 종국에는 통일이라는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해 취해야 할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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