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영 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얼마 전 문재인정부의 인사청문회 대상인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아들 병역 면제 문제를 예전과 같이 조금 거칠

게 다루었다고 급기야 청문회위원 국회의원들에게 수천통의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고 한다.

모국회의원은 이건 민주주위에 대한 유린이며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하고, 모국회의원은 정치에 대한 자기의사표현으로 양념이라고 피력했다. 국회의원들을 생각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이 반말. 폭언. 폭행을 일삼는 넉살좋은 모습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보고 배울까봐 안타까울 뿐이다. 청문회나 국정조사 때 담당자나 참고인을 호통치고 모욕을 주는 재미가 쏠쏠했던 국회의원들이 문자폭력 앞에서 무릎을 꿇을까?

아니면 지지기반 수단으로 이용할까? 또한 정치인들의 신종홍위병 얼굴 없는 문자폭탄과 무소불위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 사이의 대결 결말이 궁금하다. 직접대화보다는 인터넷과 SNS로 소통하는 세상이 되더니 막말과 막문자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막말이 마치 일상의 언어인 양 뿌리내리고 있다. 군대에서는 위계질서를 엄격히 하기 위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지시할 때 명령으로 반말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길을 걷다보면 많은 청소년들과 숙녀들까지 대화에도 욕설이 섞여있고 막말이 일반화 되어있다. 친구들이 같이 욕설을 하지 않으면 끼워주지 않는 풍토이다.

심지어 자식들이 부모님께 반말과 욕설까지 하는 패륜을 본다. 막말은 반말로 시작해 반말로 끝나기 마련이며 삿대질과 폭언·폭행으로까지 이어진다. 고운말과 고운문자는 쪽도 못 쓰는 세상이 되었다.

국어사전에서 존대어는 ‘듣는 사람이나 제삼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쓰는 말’, 반말은 ‘함부로 낮추어 하는 말’이라 명시돼 있다. 이렇듯 존대어는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뜻을 담고 있지만 반말은 상대의 인격을 무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요즈음 국회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횡행하는 막말과 폭언 행태는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 참으로 간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사람들의 인성은 점차 메말라 가고 청소년들은 갈수록 거칠어지며 각종 범죄까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 뿌리내린 문자폭력도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문자폭력은 행위 자체가 범죄행위로 성립된다. 최근에 상대방을 착각하여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에게 협박성문자를 보낸 사람이 법적 처벌을 받은 사실도 있다. 하지만 익명의 무차별적인 문자폭탄은 점차 늘어만 가고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는 하나의 오락처럼 변하고 있다.

말을 함부로 하거나 반말을 하다보면 막말을 하게 되고 욕설과 폭력으로 이어져 인간관계가 각박해지면서 사회가 혼란해진다. 존댓말을 주고받으면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대화 시 짜증과 화도 줄어들며 높았던 억양도 낮아질 것이다.

고운문자와 막문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막말보다도 익명으로 숨어서 무차별적으로 기관총처럼 날려버리는 문자폭탄이다. 직접 알고 있는 지인에게야 갈등이 심한경우 자신의 의견피력문자나 반박문자를 날릴 수 있다.

이런 경우 상대방을 의식한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경제인, 예술인, 사회지도층인사 등에게 막무가내로 날리는 문자폭력이 문제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든지,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주장을 표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익명으로 암흑의 커튼 뒤에 숨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이나 막말로 상대방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놓고 괴로워하는 것을 즐겨서야 말이 되는가. 논리 정연한 고운 말이나 상식적인 문자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는 없는가?

호칭을 격상하고 고운문자를 쓴다면 서로를 존중하게 되어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화합의 씨앗이 될게 아닌가.

이제 존댓말과 고운문자의 위력을 명심하였으면 좋겠다. 더욱이 존대문자, 고운문자, 바른 문자는 하루속히 우리 사회의 조직 소통의 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옛말에 ‘한 마디 말로 천냥빚을 갚는다.’고 했지만 그 반대로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입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운문자 한구절로 만냥빚을 갚고, 반대로 막 문자 한 구절이 상대편 심장에 박혀 재앙을 불러오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막말과 막 문자의 무덤을 하나씩 팔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허준이 쓴 동의보감의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통하면 아프지 아니하고 통하지 아니하면 아프다고 했다. 이제는 올바른 말과 문자소통으로 온 마을이, 온 나라가 세대간, 남녀간, 지역간, 계층간 화기애애한 소통의 꽃을 활짝 피워 밝은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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