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직 시인

산문을 지나면 계곡 길
지문을 묻히는 바람 같이 산을 오르네
바위를 지나고 잡목 숲과 억새 덤불을 스칠 때
소소한 바람소리가 책장 넘기는 소리로 들리네
몸에 닿은 소리는 내부를 거쳐 데워지고
신경을 따라 불빛을 깜박이다 사라지네
생각하네
초겨울 산사에서 동안거에 든 사람은
계곡의 어느 여백 속으로 옮겨 다니다 바람으로 숨는지
경을 읽다가 또 무슨 소리가 되어
산봉우리 끝으로 가서 자신을 버리는지
아니면 겨울의 땅 툰드라 지대에서
경을 외는 눈송이로 날아다니는지
산을 오르네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은
희디흰 경의 뼈를 보는 일이네
높게 솟아 가지런히 동안거에 든 불국의 숲
그 산방에 조용히 귀를 대보는 일이네

△ 시집 ‘불멸의 눈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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