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소설가) 점심준비가 되어 있으니 마을회관으로 나와 복달임을 하자는 마을방송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초복이다. 창달 씨는 때에 맞춰 회관으로 나갔다. “아니 웬 복날에 꽁보리밥여 마을 돈두 가물을 탔구먼.” “그러게, 아무리 가물기로서니 마을 돈이 그렇게 말랐어 이거 가지구 더위에 몸보신이 되겄어. 아무리 그래두 작년처럼 삼계탕은 먹어야지. 안 그려 이장?” “내두 고민 끝에 부녀회장하구 대동계장하구 상의해서 한 거유. 보셔유, 보신탕은 잡는 과정이 어떻다, 밀려오는 중국산은 누렁이가 아니라 이리다, 항생제 든 사료만 먹여 인체에 해롭다 하는 소문이 나돌아 벌써 재작년부터 먹기를 꺼려했지유. 그래서 작년엔 삼계탕으루 했지유. 그런데 올핸 그느무 에이아이(AI)인가가 닭한테두 왔다잖어유. 그런 걸 어떻게 삼계탕을 해유. 그래서 꽁보리밥을 한 거유. 꽁보리밥, 옛날 누렁이들 집집이 있을 적 보릿고개 춘궁기에나 먹어본 것 아니유. 꽁보리밥 썩썩 비벼먹던 시절 잊었어유. 요샌 돈 주구 사먹어야 돼유. 이 보리쌀두 부녀회에서 어렵사리 구해가지구 땀을 뻘뻘 흘리면서 때끼구 잦히꾸 뜸들여서 지은 거래유. 그런 부녀회원들한테 수고했단 소리는 고사하구 뭔 그리 투정들만 부려유?” “원 이 사람 농담두 못하는가. 알았네 알았어. 미안햐.” “그건 그렇구 오늘이 개고기날이지. 여게 개고기, 오늘 꽁보리밥 많이 먹게!” 창달 씨를 보고 하는 소리다. 창달 씨를 개고기란다. 그게 사연이 있다.

창달이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바로 아래동생하고 엄마 따라 서울 이모네를 가서 한 닷새 있었다. 그곳 또래들과 어울리려는데 이 서울깍쟁이들이 시골뜨기라고 두 형제를 깔보고 놀리면서 그중 제일 큰놈이 놀이삼아 동생의 머리를 알밤으로 쥐어박는 거였다. 동생이 울면서 형을 쳐다보는데 그게 응원을 청하는 것 같았다. 한 살 차이 연년생이지만 동생은 형을 늘 자신의 보호막으로 여기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형에게 응원을 청하면서 의지해 왔다. 그러니 창달인 형의 입장에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놈은 허우대가 자기보다도 크다. “니 와 까닭 없이 내 동상 쥐어박아?” “어쭈, 시골뜨기가 날 째려보믄 어쩔래?” 창달인 그 말에 더욱 화가 치밀어 자신도 모르게 녀석의 뺨을 냅다 후려치곤 벌컥 밀어버렸다. 뒤로 발랑 자빠진 놈을 올라타곤 사정없이 뺨을 내리쳤다. 지나가던 어른이 떼어놓지 않았으면 더 계속할 것이었다. 주위를 보니 또래 애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걸 보고 다 도망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맞은 애의 엄마라는 사람이 쫓아와서 우악스런 시골 놈이 연약하고 곱게 키운 내 자식을 사정없이 팼다고 죽일 놈 살릴 놈 해가며 마구 삿대질을 하는 게 아닌가. 이에 창달이 엄마가 나섰다. “뭤여, 아나 죽여 봐라. 내 자식 죽이면 그 자식은 온전할 것 같애. 엇다 대구 삿대질이야. 그래 너 죽구 나 죽자!” 하고 그 애 엄마의 머리채를 잡으려 하자 그 엄만 혼비백산 달아나고 말았다. 그 유순한 엄마가 이렇게 독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다음날부턴 또래 애들이 창달일 보면 슬슬 피하면서 저애 ‘개고기’라고 수군수군 거리고 그 애 엄만 창달이 엄마를 ‘이북여자’ 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걸 보았다. “이모부, 애들이 와 날보구 ‘개고기’라구 그래유?” “허허, 그러냐. 어저께 네가 너보다 큰애를 두들긴 걸 보고 너를 ‘성질이 질기고 사나운 막된 사람’으로 본 모양이구나.” 이 개고기 일을 시골집에 내려와서 동생이 영웅담처럼 마을에 퍼뜨렸다. 이런 후로 마을에선 개고기날인 복날이 되면 창달일 보신탕 대신 개고기라 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성인이 된 창달이가 개고기를 먹어보곤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개고기가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는데 왜 개고기를 검질기고 막된 사람이라 하는 걸까?’ 이와 반대로 창달인 그야말로 파리 한 마리,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아주 유약한 사람인 것이다.

한자학습혁명 박흥균 원리학자에 의하면, 옛날 중국인에게 있어서 개는 야생상태에 있는 이리를 식용으로 사육하기 위해 길들인 가축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산 개는 이리다 하는 말이 난 모양이다. 또 여우 호(狐), 고양이 묘(猫), 원숭이 원(猿), 멧돼지 저(猪) 등의 한자엔 개 견(犬·犭)자가 들어가는데, 이러한 짐승들은 모두 사납고(猛), 교활하고(狡), 미친 듯한(狂)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고기를, 성질이 검질기고 사납고 막된 사람이라 속되게 비유하는 걸 것이다. 이런 걸 모르는 창달 씨다. ‘이북여자’라는 별칭이 붙은 어머닌 벌써 돌아가셨지만 칠십 중반으로 들어선 그는 아직도 ‘개고기’의 그 속된 말에 회의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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