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권수애 논설위원/충북대 교수) 70년대 초 대학생이었던 나는 지금의 학생들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

졸업에 필요한 이수학점이 160학점이고 교직과목까지 이수하다보니 수업시간은 많았다. 필수로 이수해야 할 교양학점도 많았고 과목도 다양했다. 국어, 영어, 제2외국어, 미적분, 물리, 화학, 역사, 철학, 윤리, 체육 등이 필수로 이수해야 할 과목이었다.

교양과목에서 F학점을 받으면 바로 계절학기 수강을 해야 해서 방학을 반납하는 불운을 겪어야 하니 F학점만 아니면 다행으로 생각하였고 학교성적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지금의 계절강좌 수강은 자발적인 것이지만 당시는 강제적인 이수의 불명예였다.

정치적 이슈에 대한 깊은 이해나 사명감과 관계없이 모두 한마음으로 최루가스를 마시며 데모에 가담하고 수업 거부와 동맹 휴학에 동참했던 시기이다.

특히 2학기에는 데모로 10월 이후 학교에 출석한 날이 손꼽을 정도로 대학시절을 보내어 아쉬움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나 역사, 철학과목의 과제제출에 필요한 추천도서를 읽은 것이 아직도 마음의 양식으로 남아 있고 고맙게도 생활의 지혜로 활용할 때가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그 때보다 사고의 깊이가 더해진 것 같지는 않다. 60∼70년대 철학자겸 수필가로 젊은이에게 존경받고 희망의 등대가 되어 트로이카 시대를 펼치셨던 세 교수가 있다.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 안병욱 전 숭실대 교수와 함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요즘 다시 회자되고 있다. 김형석 교수의 수필집 『백년을 살아보니』를 통해서다. 세분들은 평소 친하게 지내셨고, 교수로서의 직분인 학문적 연구와 교육 뿐 아니라 대중을 위한 방송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젊은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셨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 계시면서 아직도 공부를 하고 인문학 강연과 책을 쓰며 살아가시는 김형석 교수는 늘 조심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고 한다.

혼탁한 세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오신 건강한 모습에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온다. 김 교수는 금전적인 것만을 좇아 일하기보다 일 속에서 올바른 가치를 창출하고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하고자 함께 노력하는 것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과 가정만이 아닌 인간답게 더불어 살 수 있게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와 취미활동 그리고 일의 3가지를 꼭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공부를 하고 60이 넘어도 독서를 통해 항상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자기 교육에 책임질 것을 주문하면서,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인생을 보람 있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6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는 60세면 인생의 끝이라고 여겼던 시기에, 미국에 계실 당시 교수들 사이에서 제일 많이 이야기한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에 자극을 받았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도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지금까지 일에 쫓겨 나를 위한 공부에 게을렀음을 반성하며 자기성장을 위한 공부를 시작해야겠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전달할 자신은 없다. 요즘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문학 강좌에 관심이 간다.

대면교육이 아니라도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의 변화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시간의 약속을 지키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취미활동도 찾아야겠다. 나이 듦에 서글퍼하지 말라는 주변 지인들의 조언을 새기면서, 이만큼의 건강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무사히 정년퇴임을 맞을 수 있게 지원해 준 가족과 직장 동료, 그리고 그간 만나고 헤어졌던 많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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