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환 <옥천교육지원청 교육장>

내 마음 속 깊은 곳 아직도 남아 있는 스승은 고교 2학년 담임이셨던 김용재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우리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며 함께 대화를 나누셨고 제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신 멋진 선생님이셨다.

나는 그런 김용재 선생님을 몹시 좋아해 선생님이 지도교사로 계시던 청소년적십자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한 번은 대전 시내 중고등부 청소년적십자 연합동아리 행사로 계룡산 연천봉을 등반하게 되었다. 산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뜬 우리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웃고 떠들면서 동학사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선생님을 따라 다른 학교 단원들보다 앞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산 중턱 쯤 올랐을 때 갑자기 안개가 짙어지면서 길을 잃고 말았다. 우리는 점점 불안해져갔고, 몇 번 올라와 본 경험이 있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그 당시에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심신이 매우 지쳤을 뿐만 아니라 공포심으로 서서히 공항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길을 찾아 헤매다 어둠이 완전히 산을 뒤덮을 즈음 가까스로 길을 찾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추위와 공포, 배고픔과 피로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고 달래주시며 선생님께서 사주신 짜장면과 탕수육의 맛은 그날의 지옥 산행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시작한 청소년단체 활동은 졸업 후 대학생활까지도 쭉 이어져 응급처치 강사로 활동하게 되었고 일선학교 학생들의 응급처치 교육은 물론 대전·충남 민방위대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응급처치법 보급을 위해 힘썼으며, 여름이면 인명구조원으로 활동하며 물에 빠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등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대학 3학년 때는 단원들과 함께 힘을 모아 ‘벽공근로청소년학원’이라는 야학을 설립하여 지극한 정성과 눈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일은 일생동안나의 가슴 한가운데 가장 큰 보람과 자부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야학 교사의 인연이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지금의 교직으로 연결해 주었음은 그만큼 야학에서의 눈물과 보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교직에 들어와서도 걸스카우트, 청소년연맹, 청소년적십자 지도교사를 하며 단원들의 활동을 돕기 위해 심성계발, 레크리에이션 강사, 레크댄스지도자, 청소년지도사 자격증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전문직도 청소년활동 분야로 들어와서 청천야영장, 단재교육연수원 학생교육 담당연구사로 학생들과 함께 활동하며 나름의 보람을 얻으며 청소년 교육의 길을 꾸준히 걸어 왔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많은 학생들은 청소년단체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부모님과 선생님의 마음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배려하며 민주시민 의식을 기를 수 있었던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충북의 학생들이 다양한 청소년활동으로 호연지기를 키우고 서로 협력하고 도와가는 삶의 지혜를 익혀 미래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 주기를 소망해본다.

그 시절 김용재 선생님과 함께 산속에서 길을 잃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지혜를 모아 길을 찾아갔던 경험은 나의 가슴 속 깊이 삶의 나침반이 되어 길을 잃은 청소년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따뜻한 교육을 하는 샛별이 되었다.

길을 잃어야 길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한다. 역경이 닥치기 전에는 자신의 능력을 모른다는 말처럼 고난과 역경이 강할 때 삶은 더욱 생명력이 넘치게 되는 것 같다.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꿈이 이끄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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