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고추장 상추쌈밥을 싸먹은 최초의 한시(漢詩)’, 상추잎에 밥과 고추장을 싸서 먹었다는 내용을 담은 최초의 한시(漢詩)라는 뜻이다.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최초의 현대소설 무정 등이 있다. 이문건은 최초의 육아일기 『양아록』, 『농서공족보』에 부착한 최초의 초상화 등 7가지 최초의 작품을 남겼다. 최초라는 말은 선진적이며 창의적이라는 뜻이다. 최초는 온지신하면 된다. 남보다 앞서는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들은 그 방법을 알려주면 적극 수용실천했다.

최초선진창의력을 발휘하려면 지나친 말이겠지만, 입맛도 밥맛도 모를 정도로, 쉴 틈은 있어서 놀 틈은 없이 공부하여 사고성신(師故成新)해야한다. 무더위가 8.15까지는 계속된다. 입맛도 밥맛도 없다고 할 때다. 이럴 때 오이냉국이 입맛을 돋운다. 또 보리밥에 고추장을 넣어 상추쌈을 싸서 먹어도 상큼하다. 풋고추도 좋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맛있게 육체의 양식도 먹고 마음의 양식인 지식도 먹어보자.

100여년 전, 상추잎에 고추장을 넣어 밥을 싸먹은 사실을 한시(漢詩)에 담은 인물이 있다. 바로 송암 김재식(金在植1860~1928)이다. 그는 서울에 올라가 살다가 1904년 지금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외천리에 귀향했다. 그러다 산수가 좋다고 여겨 지금의 세종시 부용면 부강리로 이사했다. 그는 귀향생활을 하면서 사계절 동안에 직접 목격했던 당시 농촌의 전형적인 실상을 3차에 걸쳐 「향거사시즉사(鄕居四時卽事)」 3편 36수의 시에 실제 그대로 그려냈다. 이는 1900년대초 농촌의 전형적인 풍속생활실태를 시로 쓴 농촌생활시사(詩史)이자, 농촌풍속사생화(風俗寫生畫)이다.

이제 김재식이 지은 한시 「끽와거(喫萵苣)」즉 ‘상치쌈 싸먹기’를 맛보기로 하자. 맥반포와쌍협관(麥飯包萵雙頰寬), 보리밥에 상치를 싸 넣으니 양 볼이 불룩하고,/葱羹兼啜野廚寒(葱羹兼啜野廚寒). 파국을 곁들여 마시니 들밥이 시원하네./고초설장명재구(苦椒屑醬名纔具), 고추 가루로 만든 고추장 이름만 겨우 고추장이지,/색부전홍미차산(色不全紅味且酸). 색깔이 완전히 빨갛지 않고 맛도 또한 시큼새콤하네./

현재까지 조사한 바, 「끽와거(喫萵苣)」는 고추장을 넣어 상추쌈밥을 싸먹은 사실을 묘사한 최초의 한시(漢詩)이다. 제1~2구를 통해서 보리밥에 상치를 싸서 먹을 때 양 볼이 불룩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파를 넣어 끓인 국물을 마시니 그 맛이 후련하다. 제3~4구를 통해, 고추도 귀해서 고추장을 희멀겋게 담아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초까지 냉장고가 흔치 않아서, 여름이 되면 고추장맛이 시금털털했다. 이 내용은 2015년 『열상고전연구』 제52집에 “송암 김재식의 「향거사시즉사」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다루었다. 매일신문 1913년 3월 2일 2면에 “忠北의 萵苣 獎勵”라는 기사가 실려있다. 김재식이 ‘끽와거(喫萵苣)’라는 시를 지은 시기와 같은 시기이다. 충청북도청에서 초근목피를 먹는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다량의 신품종 상추종자를 각 군청에 배급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보급하라는 도정시책을 보도한 기사이다.

이현목(李顯穆)은 「와거(咼苣)」라는 시에서 쌀밥을 상추에 싸서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고추장이나 된장과 함께 싸먹는다는 내용은 없다. 지규식(池圭植 1851~?)의 『하재일기(荷齋日記)』에 김재식의 이름이 보이고, ‘상추쌈밥을 먹었다’는 기록이 세 번 나오는데 고추장과 함께 먹었다는 내용은 없다. 한국고전번역원에 검색한 결과, 고추장으로 쌈을 싸서 먹는다고 표현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당연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외람되나 필자는 개인취향이지만 1981년부터 쉬기는 해도 놀지는 않았다.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맘 편히 식사를 하지 못했다. 먹고 자는 시간이외에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청주 중앙공원에 있는 청녕각(請寧閣)을 가짜라고 주장하는 등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았다. 또 창의력을 발휘한 문화유산을 찾아 소개했다. 상추는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 여름철에 상추를 먹으면 몸의 더운 기운을 줄일 수 있다. 이 여름 고추장 상추쌈밥을 싸먹고 열기를 식히며, 창의적 논문과 창의적인 책을 써보려한다. 또한 상추의 냉기를 받아 강철천재가 되어, 최초선진창의력을 발휘한 문화유산을 찾아내는데 맹진할 것이다. 땡볕을 많이 쪼이면, 가을에 내 학문의 사과에서도 농익은 여인의 보드라운 입술의 감미로운 주홍빛 향기가 더욱 진하게 피어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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