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자 <시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샹젤리제 거리는 유럽풍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림 속 주인공으로 걸어 들어가 사진을 찍고 돌아서며 딸아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엄마, 내 아이폰, 없어졌어”하더니 오던 길을 되돌아 마구 뛰었다. 순간, 방금 전에 사진을 담고 있는 우리 곁을 스쳐 지난 앙케이트 조사를 가장한 짚시 여인이 뇌리를 스쳤다. 딸아이의 직감도 정확했다. 아이는 벌써 도로 위를 마구 건너 뛰어가고 있었다. 이국의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돌아와, 그냥 돌아와-” 소리치는 내 앞에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차량들이 일제히 멈춰 있었다. 그 순간에도 사람이 우선인 프랑스 사람들의 성숙한 시민 의식과 교통질서가 놀라웠다. ‘이래서 선진국이라고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뒤쫓던 딸아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을까, 아이폰을 들고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뛰어오는 딸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라 광장에 있던 프랑스 한 남자가 처음부터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딸아이를 향해 승리의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아이의 얼굴을 보자 격한 감정이 밀물쳤다. “엄마는 아이폰 잃어버리는 건 괜찮은데 그 속에 담긴 사진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얼마나 가슴 쫄았는지 몰라...역시 내딸이야, 대단해!.. 근데 어떻게 아이폰을 찾았어?” 딸아이에게 물었더니 강한 어조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니까 그 짚시 여인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주머니에서 꺼내 내주더라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떠나는 유럽 여행 계획에 설레며 과사무실 알바를 하며 화질이 좋다는 아이폰으로 바꿨단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진 시민 의식을 지녔다고 하는 프랑스 치안은 왜 이리도 허술한지 잠시 이국에서 맞닥뜨린 두려움은 어디로 가고 내가 모르던 딸아이의 강인한 모습에 눈 내리던 콩코드 광장은 한 폭의 수채화 그림 속 풍경처럼 사진과 함께 지울 수 없는 감동으로 각인되었다.
“미라보다리 아래 센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는 아뽈리네르의 싯구를 읊조리며 이상을 꿈꾸던 젊은 날이 내게도 있었다. 불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몽마르트 언덕'이며' 샹젤리제 거리'는 멜랑코리한 샹송과 함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알 수 없는 동경과 지적 목마름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꽃다운 나이임에도 꽃다운 나이인 줄도 모르고 보낸 스무 살, 그 시절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문화와 예술, 패션의 도시 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동경의 대상이었던가. 그러나 지금 그 거리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와 난민들로 하여 치안은 더욱 불안해지고 국가 간에도 서로 먹고 살기 힘든 무한 경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이상과 현실은 늘 이렇게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아이와 함께한 프랑스 여행 중에 생긴 해피엔딩의 사건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청춘이란 장미 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정의’를 다시금 주입시키는 이유는 평안에 기거해서 나름 익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늙어가고 있는 일상에 대한 스스로를 향한 따끔한 경고가 아닐까 싶다.
추억이 있어 더욱 풍요로운 생 앞에, 매일 아침 눈뜨면 태양은 또다시 떠오르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오늘’이라는 선물에 맘껏 감사하고 맘껏 행복해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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