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그 사람은 늙어서 죽는 게 소원이래.” 웃으면서 누가 말했다. 기억도 가뭇한 오래 전 일이다. 듣던 이들도 왁자하게 따라 웃었던 것 같다, 시답잖다는 듯이. 당연한 일을 소원으로까지 격상시키는 것이 이상하거나 늙음과 죽음을 대화에 올리는 게 낯설만치 젊었을 그 어느 때.

아버지가 아프시다. 우리 아버지도 중한 병이 걸렸다는 사실이 낯설고 안 믿긴다. 아는 것과감정까지 동의하는 데는 확실히 반복된 인식과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누구나 아플 수 있어도 우리 아버지가 아픈 건 낯설다. 아버지 나이와 견주어 죽을만치 늙는 게 어떤 건지를 생각할 수도 없다. 아직은 우리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당위만이 생떼를 쓰듯 중요하다. 그러면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 방식의 삶으로 함께 사는 건 마지막인 이별이니 그 이별의 시점은 늦출만치 늦추고 싶은 거라고, 당연히 죽음 앞에서는 늘 아직은 아닌 것 같고 더 미루고 싶을 것이라고. 아프지 말고 늙어서, 아프더라도 늙기까지, 늙더라도 되는 데 까지 오래 살았으면 싶은 건 이 땅에서 이렇게 사는 게 꼭 좋아서이기보다 이별하는 두려운 죽음을 피하려는 마음의 방어기제일지 모른다. 늙어 죽는 게 소원이라는 누군가의 바람은 그러니까 모든 인간에게 절실한 것일 수 있다. 궁극에는 죽을 만치 늙는다는 기준이 뭔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리겠지만.

아버지는 한동안 집에서 병간하다가 병원으로 가셨다. 폐가 안좋다니 공기 맑은 요양 병원에서 좀 지내보겠다고 스스로 원해서 들어가셨다. 요양병원을 아버지가 원해서 가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병원에 며칠 입원하던 도중 요양병원을 알아보라고 하실 때 깜짝 놀랐다. 엄마를 집에 두고 아버지 혼자 가시겠다니. 막상 입원할 날이 임박하자 긴장을 하시는 것도 같았다. 중환자처럼 누워계실 것도 아니고 일 없이 텔레비전을 들여다 보지도 않으니 번잡하게 여럿이 쓰는 방은 어려울 것 같았는데 다행히 독방이 넓고 환했다. 무엇보다 사방이 숲이어서 폐에는 좋을 공기가 창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들 것 같았다. 넓고 큰 방을 혼자 쓰면서 엄마 잔소리도 안듣고 하루종일 인터넷도 하고 보살핌도 잘 받으니 좋으시다고, 우리 공부시키고 밥 먹이는 걱정도 없으니 편하게 쉬고 있다고, 운동실에서 운동도 한다고, 다른 노인들도 아버지처럼 인터넷을 쓸 수 있으면 사는 게 훨씬 더 재미있어 질 거라고 남들 걱정까지 하신다. 이럴 때 아버지는 폐가 아픈게 아니라 인터넷 중독으로 입원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랬으면 더 나을까.

요양병원에 가는 일이 부모는 싫어하고 자식들이 어쩔 수 없이 권하는 모양새인줄 알았더니 반대일 수 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언니는 그랬다. 조금만 계시다 다시 집으로 가시자고는 했지만 병원에 모셔두니 자식 입장에서 안심되는 것도 한 편으로는 사실이다.

이래저래 우리 문명 세계에서 거주 공간에는 일상만 있고, 나고 죽는 운명의 자리는 없게 생겼다. 살던 자리에서 쓰던 물건들 정돈해 나눠주고 가족 친지들 배웅받으며 저 세상으로 가는 풍경은 이제 귀하다.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다가 병원에서 생을 마치는 것이 익숙한 일들이 되고 있다. 어릴 때 어른들은 객사 이야기를 아주 불길한 듯이 숨게숨게 하셨다. 누가 객사를 했다는 말은 마치 천벌에 버금가는 것으로 여길 만치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로 여겼다. 그 때 문법대로라면 현대인들은 대체로 객사를 하는 셈일지 어떨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는 이들이 많고 천수를 다했대도 마지막은 늙어서가 아니라 환자로 생을 마감하는 형식을 취하게 되니까.

누구는 그랬다. 현대 문명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일상에서 추방해 버렸다고. 생명의 신비도 죽음의 엄중함도 유폐시키고 젊음과 생기만을 일상에서 보고 싶어한다고.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 모두가 받아놓은 밥상인 죽음을 강박적으로 먼 데로 추방해 버려두고 우리 삶에 그 불길한 그림자도 비추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죽음을 잊으려는 그 사실일지 모른다. 늙고 죽는 일은 생각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지만 불길하다고 치워버릴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게 우리의 슬픔이고 문제거리이므로. 어떻더라도 골육의 노쇠와 병마 앞에서는 황망하고 어릿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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