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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세이-아버님, 그립습니다
동양에세이-아버님, 그립습니다
  • 오명희
  • 승인 2017.07.0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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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희 <수필가>

지난 5월 스승의 날, 남편과 함께 아침신문을 읽다가 눈물을 쏟고 말았다. 동양일보 기획특집 면, 거기 시집 온지 얼마 안 되어 저 세상으로 가신 시아버님을 ‘큰 스승’으로 우러러 기리는 좌담 기사가 장장 두면에 걸쳐 가득 실려 있었다.
“나라와 후생 사랑으로 뜨겁되, 초연히 ‘스승의 길’ 걷다”란 제하에 실린 세분 교수님들의 발제논문을 읽다 보니, 처음엔 감동에 젖어 흘리던 눈물이 다 읽고 나서는 훌륭하신 분의 며느리로 살아오며, 그 유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 해 왔다는 부끄럼과 송구스러움에 젖은 눈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가슴속에 묻고 살아왔던 아버님을 다시 뵙는 것 같은 희열로 가슴이 벅차올라, 당신께서 6남매 중 가장 사랑하셨다는 막내아들, 막내며느리를 신혼시절 추억 속에 풍덩 빠지게 하고 말았다.
1975년, 영화 자이언트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테일러 같은 환상의 목장생활을 꿈꾸며 잘나가던 무역회사를 접고 결혼을 했다. 시아버님은 교직을 내려놓으신 후 목장을 하시게 되자, 형의 회사에 다니던 막내아들을 서울서 내려오게 하셨다는 것이다.
명망 높은 선비 가문에, 안동교육대학 학장님을 마지막으로 40년 교직생활을 마감하셨던 분과 그 당시 C대학 가정학과 교수님이셨던 분을 시부모로 모신다는 것이 나로서는 영광스런 결혼이었다. 멋이나 부리고 톡톡 튀었던 나는 두 분이 무척 어려웠다. 진지 상을 들여가면 같은 상에서 함께 식사를 꼭 하게 하셨다. 며느리에 대한 예우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족한 며느리였을까 싶다.
시댁에서 불과 몇 달 동안 두 분을 모시고 살다가, 집을 마련해 주시어 신접살림을 하게 된 나는, 동네에서 부러워하는 새댁이었다. 동네 꼬마들이 “새댁이다!” 하면서 쫓아다녔다. 밤에는 올빼미가 눈을 번쩍이는 시골 아닌 시골이었다. 시내버스를 타면 동네사람들이 “시골에서 어떻게 저런 여인이?” 하고 호기심도 많이 가졌단다.
아버님은 결혼 기념으로 은행나무를 심어주시고 개나리로 담을 만들어주셨다. 집 모서리마다 보라색 아이리스를 심고 들어오는 입구에는 매화나무, 등나무 각양각색의 꽃들을 심어주셨다. 새벽 5시면 자전거로 어김없이 오셔서 화단과 옥수수 밭을 가꾸셨다. 나는 일어나지도 않고 호미소리를 들으면서 불평이었다.
“왜 매일 오시는 거야?”
남편이 동원 훈련 갔을 때 어린 며느리 혼자 있는 것이 안타까우셔서 사흘을 집에서 주무셨는데, 그 깊은 뜻도 헤아리지 못하고 투정만 부렸던 너무도 생각이 모자란 철없는 며느리였다.
아버님은 애석하게도 나들이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창졸간에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사고를 낸 트럭운전수가 보험을 들지 않아 집을 팔게 될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을 아시고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게 하셨다. 세상에 마지막 남기신 배려의 손길이었다. 운명하시기 전 막내아들을 많이 찾으셨단다. 수입도 안 되는 목장 주인 아들이 걱정이 되셨을 것이다. 어느 날 나에게 “미안하다.” 고 말씀을 하셨다. 그 한 말씀이 내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셨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5년의 목장 생활 속에서 두 아들을 낳고 경운기로 우유 배달했던 추억 등을 뒤로 하고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목장을 그만두고 시내로 이사 와서 장사를 하게 된 것이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새삼스레 추억이 아롱아롱, 새록새록 하다.
신문을 읽은 다음 날, 우리 내외는 아버님 묘소를 찾아 “선생은 천품이 어질고 의로우며” 로 시작되는 비문을 소리 높여 읽어 보았다. 가슴이 촉촉해 왔다. 그러고 보니 그 많은 손자 중에 우리 작은 애가 유일하게 교직에 몸담고 있는 것 같다. 아버님의 뜻을 이은 손자가 되게 하고 싶다.
동양포럼의 ‘그리운 청주인 안택수’ 특집기사가 우리 자손들에게 아버님  유지를 잘 받들라는 격려의 채찍 같다. 그 뜻을 새기며 신문사로 달려 가 그날의 신문을 1백여 부 샀다. 고향을 떠나 사시는 시댁 분들께 두루 나누어 드리고, 친정 식구들은 물론 미구에 나올 나의 손자들 몫까지 챙긴 것이다.
40여 년 전 “아가, 애기야!”라 불러 주시던 인자하신 아버님, 이제 그 얼굴은 이 막내며느리에게 더 없는 그리움의 표상으로 영원할 것을 믿는다.
“아버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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